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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Jan 26. 2020

며느리를 싫어하는 시어머니 이야기

영화 말레피센트 2

이번 연휴에는 영화를 많이 봤다. 남편은 모처럼 연휴 내내 쉴 수 있었고 크게 할 일이 없는 우리는 틈만 나면 술상을 놓고 영화를 틀었다.


남편은 최근에 개봉한 <말레피센트 2>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려면 전작부터 봐야 한다는 남편이 <말레피센트>를 먼저 켰다. 말레피센트의 기원부터 보는 거니까 나쁘진 않겠네.


<말레피센트> 사진 출처:다음 영화


말레피센트가 스테판을 만나고, 날개를 잃고. 영화를 보지 않아도 내용을 알만큼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봤으니 딱히 흥미롭지 않았나 보다. 차례 지낸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인지 피곤한 상태로 술을 한잔 해서 인지 나는 영화 도중에 깜박 졸았다.


내가 영화 보면서 졸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너무 편하게 누워서 봐서 그럴 수도 있지. 아무튼 잠들었다 일어나니 이미 오로라 공주는 잠에서 깨어 영화는 끝나 가고 있었다. 남편이 말했다. 당신 자는 사이에 오로라가 저주로 잠들었다 키스를 받고 일어났어. 아, 우리가 알고 있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그런 내용이었구나. 다만 진정한 사랑의 키스 상대는 달랐지만.


<말레피센트 2>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이어서 영화 <말레피센트 2>가 시작되었다. 오로라공주는 이웃나라 필립 왕자의 청혼을 받고 말레피센트와 함께 왕자의 부모에게 인사를 하러 간다. 나라의 연합을 원하는 왕과 달리 왕비는 오로라 공주와 말레피센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왕자의 엄마인 왕비는 오로라 공주를 마녀의 딸이라 탐탁지 않아한다. 왕자 앞에선 공주를 위하는 척 하지만  공주의 엄마인 말레피센트에게 누명을 씌우고 오로라가 살아온 무어 숲의 모든 것을 무시한다. 공주는 서서히 왕자가 있는 궁의 모든 의복과 예절에 숨이 막힌다. 왕자에 대한 사랑만 바라보고 궁으로 들어온 공주는 왕자에게 말한다. 여기서는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이 모든 게 숨이 막힌다고.


며느리를 싫어하는 시어머니 이야기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내게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떠나,  안젤리나 졸리가 나오는 디즈니 영화라는 걸 떠나 사돈이 맘에 안 들어 온갖 구실을 갖다 붙이며 며느리감인 공주를 구박하는 왕자의 엄마가 보였다. 결국에는 말레피센트의 약점을 이용해 공격한 왕비와 말레피센트의 종족인 다크 페이는 싸움을 하게 된다. 비약하자면 시어머니는 공주의 엄마인 말레피센트와 전쟁을 벌여 공주의 나라를 말살해 버리려 한 것이다.


이 영화를 디즈니판 사랑과 전쟁이라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제는 동화가 동화로 보이지 않는 걸까. 순수함이 사라져 버린 걸까.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영화가 말하고자 한 바는 모르겠다.


명절이고 결혼해서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는 때라 그런 구도가 보였나. 영화의 결말은 그래서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지만 왕비가 패했기에 가능한 행복이었다. 만약 왕비가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무어 숲의 요정들은 모두 사라지고 엄마와 자신의 왕국을 잃은 공주는 왕자와 결혼하여 온갖 규율에 얽매여 자신조차 잃어버리고 궁에 살게 되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왕비가 염소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어린이 대상인 디즈니 영화기에 차마 왕비를 죽이진 못하고 염소로 둔갑시켰을까. 왕비까지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었을까.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것 같아 좀 뻘쭘하긴 한데, 이 영화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과 같은 마음은 아니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겠다.


최근의 디즈니 영화들은 공주들도 주체적인 캐릭터를 가졌다고 한다. 결혼하여 왕자의 나라 규율대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살지 않고 자신이 사라진다고 느끼는 오로라 공주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왕비가 염소로 변하여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은 너무 대충 아닌가.  며느리를 싫어한 시어머니의 결말이 시어머니가 염소라는 아무 힘도 없는 존재로 변하고, 그래서 모두 행복해졌다니. 그걸 보고 통쾌함을 느낄 수 없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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