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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Jul 18. 2022

저는 전과자입니다.

책을 좋아해서 저지른 전과.

저는 전과자입니다.


저는 전과자입니다. 선생님은 전과자야.


나의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조금 깊게 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내가 항상 처음으로 뱉는 문장의 레퍼토리이다. 이 말을 꺼내면 10명 중 10명은 모두 똥그란 눈으로 나를 다시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던 학생들도 모두 똥그래져서 나를 쳐다본다.


특히 이 이야기를 학기 중반쯤, 어느 정도 학생들과 친해진 후에 꺼내면, '설마, 우리가 알던 선생님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반 전체 학생들의 모든 집중력이 쫙- 올라오며, 서로 두리번두리번, 눈치 한 번씩 보고, 나를 다시 바라보는 그 순간. 여러 명의 눈동자가 흔들리게 하고, 그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묘미가 꽤 있다. 어찌 되었든 내 이야기에 '집중'해준 셈이니. 기승전결 구조로 스토리가 탄탄한 수업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오호- 잘 낚였구나. 싶은 순간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전과 말고요,
대학교 입학을 국문학과로 했어요. 그런데 과를 변경했어요.
3학년 때 지리교육과로 전과했어요. 전과자 맞죠.  


청중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약 30초 간, 적당히 즐긴 후, 뒤이어 부연설명을 해준다. 정말로 전과자가 돼버리면 안 되니. 대학교 입학 후 과를 변경하는 '전과'를 했다고 웃으며 설명해주면 '에이 뭐야.', '놀랬잖아요.', '다행이네.'라는 안도의 눈빛으로 학생들의 눈빛은 다시 바뀐다. 캬. 잘 속였다. 내 이야기 속으로 데리고 오는 단계까지는 일단 성공이다! 라며 나의 전과 이야기를 풀어내 준다. (그러니 너희도 대학생 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지 말고 가능하면 고등학생 때 진로를 잘 선택하렴- 설사 진로에 맞지 않는 길을 가더라도 다시 틀면 돼. 샘처럼. 조금 돌아가도 괜찮아-)



국문과에 입학했던 나는 국문학이 싫었다. 단순하게 책을 좋아했을 뿐.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국어 과목을 너무 좋아했고, 국어 선생님들을 선망했다.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도 자연스레 국어국문과로 선택하여 진학했다. 그런데 전공 수업을 듣다 보니 나는 '국어국문학'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책', '글쓰기', '국어 선생님으로서의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좋아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고전 문학 작품을 분석하거나, 국어학 측면의 학문적 접근들을 연구하는 것은 내가 배우고 싶던 학문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대학교 2학년 중반쯤, 전공의 깊이도 달라졌을 때 이 길이 내가 바라던 학문의 세계가 아님이 명확해졌다. 그래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자아정체성의 대혼란기가 찾아왔다. 사춘기 시기보다 더 힘들었던 인생 오춘기였다. 앞으로 이 학문으로 직업을 선택하여 국문학을 평생 즐기며, 살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할수록 마음속 답은 '아니오'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공강 시간마다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 속에 파묻히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국문학과가 싫다니.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주하려니 20대 초반의 나조차 스스로가 혼란스러웠다. 도서관 구석진 자리에 앉아 내 양쪽 옆으로 책을 높이-높이- 쌓아두고 책 냄새를 큼큼 거리며 읽는 것은 좋아했으면서 연구자로서 국문학을 접근하는 것에는 자신감이 생기질 않았다.   


결국 오랜 결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단순하게 책만을 좋아하기로.


국문학과가 아닌 다른 전공을 통해 책을 만지자!


그래서 다른 과로 전과를 해버렸다. '책'을 여전히 볼 수 있고 '책'을 매개체로 학생들과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지리교육과'로. 전과라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대학 입시 과정보다 더 마음고생을 했더랬다.) 전과생이 되었다는 합격 소식을 보게 된 순간 다짐했다.


'책'으로 세상을 더 폭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주는 선생님, '글'로 세상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해주는 선생님이 되자!라고.   



단순하게 책을 좋아했을 뿐.

그래서 오늘, 이렇게 하루를 산다. 일은 바쁘고 많아도 즐겁게! 여전히 책을 좋아하며 산다.

책을 좋아한다면 그렇게 살면 된다. 책을 즐기고, 책을 읽고,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만나고, 때로는 책을 쓰기도한다. 이 순간에도 기꺼이 책을 통해 하루의 일상이 잠깐은 반짝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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