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자 Aug 07. 2022

20년 전, 첫 도서상품권, 첫 서점의 기억

5000원짜리 도서상품권으로 책 한 권 사고 거스름돈 받던 시절.


5000원짜리 도서상품권으로 책 한 권을 살 수 있던 시절

라떼는 말야. 지만..

정말 라떼는 말야, 20년 전, 5000원짜리 도서상품권 선물을 받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출판사에서 삽화 작업을 하는 일을 하신다던 삼촌은 조카에게 책이라는 재미를 알려주고 싶으셨던 걸까. 어린이날마다 도서상품권 선물을 주셨다. 엄마가 7세 이전에 영업맨을 통해 잔뜩 사다 주셨던 전집은 위인전, 과학 앨범-처럼 내 취향이 반영되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 도서상품권이 생기면 엄마는 서점에 가서 내가 직접 '알아서' 책을 골라 사오라고 하셨다. (IMF 타격을 받아 바빠진 엄마가 책 골라줄 시간이 없어서 그 것 같지만.) 그렇게 직접 동네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기 시작한 것이 내 기억 속 첫 서점이다. 읍내-라고 말해도 무방한, 시골 동네의 작은 동네 서점. 대형서점에 비해 책의 가짓수는 매우 적었을 테지만 어린 나에게 그 동네 서점은 무궁무진한 책 보물 창고처럼 아주 크게 느껴졌다.


서점에서 신중하게 고르고 골랐던 책은 '초콜릿 개 시리즈'들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2022년에 94년도에 출판된 책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내 책장에 적어도 10년은 꽂혀 있었던 제일 아끼던 책들을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표지 이미지라도 다시 마주하니 어린 시절의 동심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당시에는 5000원짜리 도서상품권 한 장의 선물은 매우 큰 선물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왜냐하면 이 한 장만 있으면 책도 한 권 살 수 있고, 책 값을 제외한 500원 또는 300원쯤을 거슬러 받아 간식도 사 먹을 수 있었다. (대체 얼마나 라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 거야-) 거스름돈을 받는 재미까지 더해주는 도서상품권은 그야말로 '선물'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커가면서 책 값도 함께 올랐고, 5000원짜리 도서상품권으로는 책 한 권을 못 사게 되었다. 2장이 있어야, 그리고 거기에 돈을 조금 더 추가해야 손해 보는 금액 없이(액면가의 몇 % 이상은 현금으로 환불이 안된다는 조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 2~3권쯤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도서상품권이라는 단어 대, 외식, 영화 등등을 모두 다 할 수 있는 '문상- 문화상품권' 이라고 이름까지 바뀌어 버렸으며 5,000원은커녕 만 원짜리 한 장으로는 책 한 권은 택도 없는 시절이 되었다. 시절의 흐름에 따라 물가 상승은 당연한 이치이겠지만 어쨌든 5,000원짜리 도서상품권 한 장에 담긴 기억은- 나에게 '책'이라는 즐거움을 함께 남긴 기억 저 너머의 추억이 되었다.       


누구나에게 지나간 서점에 대한 추억이 모두 있을 터. 그 추억이 10년, 2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현재와 잘 버무려지며 기억되고 있을지. 모두의 마음속 서점이 궁금해진다.




지경사에서 출판된 책 3권의 힘이 오늘의 나를 글 쓰게 했다.

처음 혼자 서점에 갔을 때에는 1탄인 '내 친구는 초콜릿을 좋아해'라는 책만 사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을 할 줄 아는 '초코로브스키'라는 강아지와 주인 어린이의 에피소드들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훗날 어린이들이 '해리포터' 시리즈에 빠진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다음 어린이날 삼촌이 내가 조금 더 컸다며 도서상품권 2장을 한꺼번에 선물해주셨을 때, 서점에 가서 나머지 시리즈 책 2권을 한꺼번에 골라왔다. 2탄인 '초콜릿 개의 인생은 즐거워.', 3탄인 '초콜릿 개는 모델 지망생' 내가 직접 고르는 책의 즐거움도 이미 느낀 데다가 시리즈 책을 모두 모았다는 '컬렉터'의 마음까지 더해져 두고두고 이 책들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어른이 골라준 책이 아니기에 유명한 책은 아니었을지라도 '직접 손으로 고른 첫 번째 책'이라는 상징성이 지금 생각해보면 성장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에도 '물리적'으로 책을 좋아했는지, 빤질빤질한 책 표지를 손으로 쓱- 만졌었고, 진한 녹색의 표지 글씨가 너무 예뻐서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몇 번이나 문질문질- 하며 책을 아꼈다. 그것이 물리적으로 책을, 책 표지를 좋아하게 된 내 취향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 책 3권을 통해 문학의 즐거움, 소설의 즐거움을 처음 느꼈고 그 이후로 책이 주는 이야기 늪에 빠지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과학적, 객관적 사실을 다루는 책들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 읽기를 즐겼다. (물론 20대, 30대가 되며 좋아하는 책 장르의 취향은 바뀌었지만.) 그 덕에 고등학생 때까지 책을 읽고 마음에 여운으로 남은 문학적 감수성을 한껏 담아낸 문장들로(미사여구 뒤범벅된 사춘기 시절의-) 시를 썼고, 소설도 가끔씩 끄적였다. 교내, 교외 할 것 없이 글짓기 대회에도 종종 나가 상장을 받아오며 대학 진학도 국문과로 했다.


내 시절을 되짚어보면 책 한 권이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별거 아닐 수 있었던 지경사에서 출판된 어린이 책 3권이 지금의 나를, 브런치에 글을 끄적이는 나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문득 다른이의 첫 도서상품권의 추억이, 첫 책이, 그리고 그들의 오늘 일상이 궁금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