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장은 처음이었다. 롤러스케이트를 만져본 것도 30여 년 만- 내가 롤러장이라니. 나 때문에 롤러스케이트를 처음 신어본 아이들은 내 속도 모르고 마냥 들떠있었다. 아이들은 곧장 링크로 들어가서 몸으로 첫 바퀴질에 맞서는데 나는 사실 어찌해야 할지 머뭇거려졌다.
머리는 일시정지인 채로. 하지만 내 손은 롤러를 기억하고 있었다. 여덟 살의 어린 내가 하던 대로 아이의 스케이트 끈을 꽉 조여주고, 안전장비를 착용하게 하며 타닥타닥하는 바퀴 소리에 옛날의 생각들이 장면 장면 떠오려는 순간.
우당탕탕-
난리가 났다.
아이 둘이 한 걸음 떼자마자 바로 엉덩방아에 일어나다가 또 넘어지고, 서로 잡고 일어나려다가 또다시 둘 다 넘어지고. 엄마의 트라우마따윈 엉덩방아 현장에서는 사치- 옛 시절의 감상 따위는 용납될 수 없는 롤러스케이트 초보자 링크 위. 아이를 설 수 있게 하는 도와줄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엄마라는 존재의 나밖에 없었다.
엄마라는 자리의 역할
손잡이 잡아.
서로 잡지 마.
천천히 천천히.
넘어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엄마 보지 말고 빨리 일어나.
그래야 뒷사람에게 손 밟히지 않아.
다리 조금씩 밀어봐.
너무 빨리 가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우당탕탕
그게 아니지..
어느새 나는 롤러를 뭘 안다고 아이에게 훈수를 두고 있었다.
롤러 극혐이라며?
30년 동안 롤러스케이트를 극혐 해오던 내가 전문가처럼 아이에게 훈수라니. 내 모습에 나도 놀라며 더 이상의 훈수는 안 두기로 했다. 바퀴 위에 서는 순간 주변의 이야기는 아이에게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혼자 넘어지며 터득해야 한다. 첫 20분 정도, 심하게 넘어지는 시기를 지나 아이들이 안전바를 잡고 일어설 수 있을 때부터는 조용히 지켜만 봐 주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눈빛으로 따듯하게, 고개만 끄덕끄덕- 해주었다.
엄마라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역할은 바로
기다려주기, 믿어주기, 함께해주기.
그래서 롤러스케이트장 방문 첫날, 무려 5시간이나 롤러를 타는 아이를 기다려주었다.
5시간.. 조금 심하게 길었다. 하지만 마냥 믿고 기다려준 결과, 아이는 집에 갈 때쯤, 그러니까 5시간 만에 혼자의 힘으로 일어섰고, 속도를 내기까지 했으며, 초보자 링크를 벗어나 상급자 링크로 들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