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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Jun 06. 2022

롤러스케이트03-나의 상처로 아이의 자립을 막지않겠노라

롤러스케이트 5시간-

넘어지기만 하는 시간을 견뎌내고

롤러장에 온 첫 번째 날, 한참을 아이들은 계속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했다. 억지로 시켰다면 분명 1시간도 못가 집에 가자고 했을 텐데 그냥 기다려주기니 아이가 쉬지도 않고 계속 일어났다.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힘들면 집에 가자고 이야기해봤지만. 아이는 다시 바퀴를 굴리러 링크로 들어갔다.


그렇게 첫날. 시간이 지나니 서서히 걸으며 앞으로 전진이 되고,  얼추 균형을 잡으며 서기를 시작했다. 아기 때와는 다른 차원의 새로운 걸음마를 떼는 시기와 같은 대견함이 쑥 몰려왔고 엄마는 아이 사진을 찍기 바빴다.


드디어 아이는 혼자만의 힘으로 손잡이를 잡지 않고 링크장 한 바퀴를 돌았다!!


오구오구 잘했다. 너무 대단하다!!


그 후로 아이는 롤러스케이트장에서의 첫날, 무려 5시간 동안 롤러를 탔다. 스스로 초보자 링크를 나오더니 상급자 코스로도 옮겨가서 조금씩 속도도 내기 시작했다.


엄마가 지켜봐 주기만 하는 사이, 아이 혼자 해냈다. 내가 해준 것은 물을 챙겨주고 괜찮다는 말만 해준 것뿐인데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넘어지면 일어났고, 빨리 일어나는 방법을 터득했다. 덜 넘어지는 방법을 터득하며 이리저리 방향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딱 하루만의 일이다.


그리고 딱 하루 사이, 롤러스케이트에 대한 나의 아픈 기억도, 상처도 봉인해제가 된 느낌이다. 그래서 이렇게 롤러를 소재로 한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에게 놀라고 있다. 이제는 롤러스케이트라는 단어 자체가 스스로에게  금지어라는 사실도 조금씩 희미해진 것만 같다. 아직 90프로는 상처가 남아있고, 여전히 안전에 대해 불안한 마음은 그대로이지만 10프로의 변화가 생겼다는 점 자체는 정말 큰 의미이다. 나에게는.



나의 상처로 아이의 자립을 막지는 말자.


부모가 되어보니 아이의 한계를 부모가 먼저 그어버리는 경우들이 생긴다.


너는 아직 어려-

이건 너무 위험해.

나중에 조금 더 크면 시켜줄게..


내가 아이에게 자주 해오던 말이다. 사실 아이의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었는데 부모의 과거 경험, 선입견, 상처 등으로 아이가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음악이 빵빵하게 나오는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무상무념, 링크를 수십 바퀴 돌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다짐해본다.


나의 상처로 아이의 자립을 막지는 말자.


충분히 넘어져보게 하고, 넘어지면 일어나면 그만이라는 안심을 시켜주자. 상처가 커지지 않도록 빨리 일어나는 법을 알려주되,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지켜주고 기다려주자.




롤러스케이트장 링크에 아이를 들여보내 놓고 5시간 동안이나 혼자 아이를 기다려주다가 생각을 정리하며 이 글을 쓴다. 이곳에 오면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나와 같이 바 테이블에 앉아 이렇게 음료 한 잔, 보조배터리에 기대어 아이들을 지켜봐 준다.




안내문에도 상대방을 바 테이블 쪽으로 불러 세우지 말란다. (통행에 위험하니 아예 링크장 밖이나 사이드에서 만나야 한다.)


기다려주는 바 테이블 존-

사실 조금 롤러스케이트장이 좋아지기까지 했다. 글도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나의 역할은 앉아서 아이의 안전만 잘 지켜봐 주기만 하면 그만이니. 이런 꿀 육아가 있나!!


딱, 한 번만 가보기로 하고 온 곳인데 곧 조만간 또 올 것 같은 느낌이다. 내 트라우마는 일단 모르겠고 아이들이 좋아하고 나 역시 편하니 또 오기로 아이들과 약속을 해버렸다.


오늘도 곳곳에서 아이의 자립을 기다려주고 지탱해주기 위해 항상 대기 중인 모든 부모님들, 주말 학원 수업에 아이를 들여보내 놓고, 혹은 주말 체험 수업에 아이를 들여보내 놓고 대기 중인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님들. 아이의 자립을 기다려주는 모든 부모님들의 모든 시간을 함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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