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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Jun 02. 2022

롤러스케이트01-나의 상처가 봉인 해제되었다.아이때문에

롤러스케이트 위, 너의 세상을 마음껏 달려보기를.

내 아이는 절대 롤러스케이트를 태우지 않겠다고-


어릴 적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나갔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다.

그 상처는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지금까지 롤러스케이트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내 아이도 태우지 않겠노라 다짐에 다짐을 했었다.


몇 년 전 아이가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컸을 즈음. 신랑이 아이에게 롤러스케이트를 사준다길래 결사반대를 했다. 얼마나 위험한지 아냐고.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 절대로 안된다며 반대를 했다.


그 사이 아이는 조금 더 컸고 어느 날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롤러스케이트 타고 싶어요.



휴-


평소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소극적이고, 원하는 바에 대해 잘 말을 안 하던 아이가 그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해왔을지, 얼마나 타고 싶어 했을지. 내 아이이기에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아이의 성향 상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을 한다는 것은 '진. 짜.로' 하고 싶다는 뜻이다. 아이 스스로도 수십 번은 생각했을 것이고 엄마가 안전을 문제로 안 사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엄마 마음을 생각해서 그동안 아이도 참고 참다가 정말 많이 기다리다가 꺼낸 말인 것이다.



그래, 그럼 딱 한 번만 타볼까?

아이의 롤러 타고 싶다는 말을 듣고도 서너 달은 혼자 고민을 했다. 아니 실은 아이의 마음이 바뀌거나 롤러 자체를 잊어주기를, 다른 취미로 대체해주기를 바라 왔다. 고맙게도 아이는 엄마를 잘 참아주고 잘 기다려주었다.


더 이상 롤러에 대한 말 한마디 안 꺼내고 몇 개월을 지내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인라인을 타던 또래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 눈빛을 보는 순간. 더 이상 아이를 기다리게 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위해, 나도 내 안의 두려움 밖으로 나와 보기로 했다.


그래, 그럼 우리. 딱 한 번만 타보러 갈래?



어느 주말. 큰 마음먹고 우선 동네의 롤러스케이트장에 갔다. 가는 길 내내 아이들이 어찌나 신나 하던지. 말없이 아이들의 신난 목소리를 듣는 내 마음은 참 복잡 오묘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걸 진작해줬어야 했나..




강한 자만이 살아남던 옛날 놀이터. 난 살아남지 못했다.

https://www.visualdive.com/2021/10/%EA%B0%95%ED%95%9C%EC%9E%90%EB%A7%8C%EC%9D%B4-%EC%82%B4%EC%95%84%EB%82%A8%EB%8D%98-%EC%98%9B%EB%82%A0-%EB%86%80%EC%9D%B4%ED%84%B0/

                                                출처 : 위의 링크에서 사진을 퍼왔습니다. 원본 링크도 함께 첨부합니다.


지금 시대의 엄마적 관점으로 보면 옛날 놀이터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아이들의 시선에는 정말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기구임에는 분명하지만 위험한 건 위험하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던 놀이터'라는 글을 보았을 때 인터넷상에서는 모두들 웃으며 옛날을 추억했겠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내가 다친 것은 지금의 우리 아이만 할 때쯤이다. 그 시절, 매우 활발한 성격이었던 나는 친구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아파트 단지 곳곳을 겁도 없이 쌩쌩 누비고 다녔다. 사고가 나던 날. 친구와 롤러스케이트를 탄 채로 놀이터의 놀이기구들을 탔다. 겁도 없이. 그림 상의 지구본 원심분리기와 유사한 놀이기구(쌩쌩이-라고 불렀다.)에 바퀴 달린 신발을 탄 채로 올라탔고, 친구는 쌩쌩이를 최고 속도로 돌렸다. 사고는 한순간이었다. 일반 신발을 신은 채로 타도 위험한데 롤러까지 탔으니. 결국 사고가 날 수밖에.   

이 놀이기구를 우리 동네에서는 쌩쌩이라고 불렀다.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그날의 기억은 여기까지만- 더 이상의 사고 이야기는 안 하고 싶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는 것 자체도 참 힘든 일이고, 가족을 포함한 그 누구도 나의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 정도로 나에게는 봉인되어 왔던 큰 상처.


그날 이후로 난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로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아직도 아주 피곤한 날, 가끔은 꿈에 나오는 그 사건.


30년 간, 롤러스케이트는 내 인생에서의 금기어였다.

그런데 자식이 뭔지. 아이의 말 한마디에 20년을 봉인해놨던 그 금기어를 내뱉을 줄이야.


그래, 일단 롤러장에 가보자.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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