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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 Jan 01. 2022

[단편] 조각 케이크

소소한 관계의 시작

그녀는 늘 카페에 갈 때면 조각 케이크를 시키곤 했다. 음료는 언제나 똑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 씁쓸한 맛에는 달콤한 조각 케이크가 어울린다고 했다. 크기가 작고 아담해 부담스럽지 않고 모양도 아기자기해 시각을 즐겁게 하는 조각 케이크. 딸기, 쇼콜라, 치즈, 브라우니... 그녀와 만날 때마다 나는 다양한 조각 케이크를 자연스럽게 맛볼 수 있었다. 

전시장 안에 진열되어 있는 조각 케이크들을 바라볼 때 난 알 수 없는 친밀감이 들었다. 마치 그곳에서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줄 오랜 친구처럼. 그들이 내게 작은 인사를 건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묵묵히 새로운 손님에게 팔리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나면 녹아서 사라질 존재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이 늘 반가웠다. 

“뭐 먹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어디 보자... 오늘은 치즈 베리를 먹어볼까?” 치즈와 딸기를 혼합해 상큼하면서도 고소한, 새로 나온 종류였다. “그래 좋아. 여기 치즈 베리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그녀의 단호함에 직원은 포스에 빠르게 주문 사항을 입력했다. “적립 쿠폰은 없으시고요?” “네, 괜찮아요.” 늘 방문하는 카페가 달라 그녀는 적립 따위는 하지 않는다. 

“잘 지냈어?” 조각 케이크를 앞에 두고 그녀가 말했다. “응 뭐 그럭저럭. 잘 지냈고?” 의미 없는 안부 인사가 우리 사이를 맴돌았다. 그녀는 가만히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조각 케이크의 뾰족한 부분을 천천히 내려 깎듯이- 포크 위에 얹었다. 나는 가만히 그녀의 포크 끝을 바라보았다. 포크 위의 조각 케이크의 작은 조각은 그녀의 입 속으로 무사히 도착했다. 그녀가 작은 미소를 짓자 나는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조각 케이크를 즐기며 우리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거리에는 무언가 생각에 가득 찬 얼굴로 발걸음을 바쁘게 옮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참... 그 소식 들었어?” 그녀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작은 이야기가 담긴 상자를 내밀었다. “어떤 소식?” 나는 가만히 그 상자를 열었다. “주영이 말이야...” 주영이는 우리와는 크게 친하지는 않았던 같은 과 동기였다. 있는 듯 없는 듯 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했던. 

나는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와 눈과 그리고 그녀의 포크 끝,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속의 얼음을 바라봤다. 달그락. 얼음이 조금씩 녹을 때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는 조금 더 연해졌다. 창밖의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거리를 오갔다. 조각 케이크는 진열장 밖 세상에서 작은 몸을 웅크린 채 우리의 표정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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