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모 Jan 01. 2022

[단편] 산불

권력은 질문을 하는 자에게 있다

산불은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몰랐다. 진호와 혜수와 선미는 산불 앞에 서 있었다. 겉잡을 수 없이 번지는 불길을 바라보던 진호는 그것이 마치 뜨거운 괴물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잠시 산불의 입장에서 지금 이 상황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생명이 숨쉬고 있었다. 그가 집어삼키는 모든 것이 그의 일부가 되었고 그는 더욱 거대해져갔다. 진호는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진호야!" 혜수의 외침이 있었을 때 진호는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떻게 끄지?" 선미가 말했다. 이 거대한 불을 끄기에는 아주 거대한 저수지가 필요해 보였다. 산불을 바라보던 진호는 혜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언제나 생각해 왔지만. 혜수는 왠지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의 눈빛을 가지고 있다. 진호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어떻게 하지?" 하지만 혜수는 "그러게 어떻게 하지?"라고 반문할 뿐이었다. 

혜수가 불을 끄는 방법을 정말로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호는 혜수의 답을 기다렸다. 이것만은 확실했다. '혜수의 말이 곧 정답이다.' 진호는 그 믿음을 굳게 간직한 채 혜수의 뒤에서 산불을 바라보았다. 불길은 아까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단은 도움을 청하자." 혜수가 말했다. 하지만 진호와 혜수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연락을 취할 만한 어떤 도구도 없었다. 숙소는 산불이 시작된 지점 쯤에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의 외침을 듣고 허겁지겁 나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점차 커져가는 불길 앞에 그들은 너무나도 무력한 존재였다. 

"그런데 대체 누가 불을 지른 거지?" 그때 문득, 선미가 질문을 던졌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 선인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