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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 Jan 01. 2022

[단편] 선인장

식물의 생존기

초록색 식물은 생각했다. [이것 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 뜨거운 햇살에 목이 말랐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 살아있는 생물체는 오직 자신밖에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비가 내리면 물을 벌컥벌컥 마시리라. 생각하면서 초록색 식물은 자신의 보잘것 없이 얇은 몸을 내려다 봤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간절한 질문은 그가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였다. 

황량한 사막. 피할 수 없이 쏟아지는 직사광선. 그 앞에 한점의 그늘도 찾을 수 없는 무력한 존재. 더 말할 것 없이- 그저 그것이 자기 자신이었다. 아무런 변명도 핑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존재자체로 살아있음을 울부짖어야했다. 괜찮아지겠지, 하는 희망만이 그를 버티게 했다. 

그는 우선 언제 내릴지 모를 비를 위해 자신의 뿌리를 최대한 지상 가까이 끌어올렸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흡수할 수 있도록 넓게 퍼지도록 했다. 그는 그의 얇디 얇은 줄기를 있는 힘껏 부풀렸다. 비가 오면 몸 안에 최대한 많은 양의 물을 담아야만 했다. 그래야 다음 비가 내릴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곤 넓은 잎파리는 작고 뾰족하게 변화시켜 수분증발을 최소화 시켰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변화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잎파리는 다른 존재를 상처입힐 수 있는 가시로 퇴화했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생전 처음보는 초록색 식물의 모양새를 보며 비웃었다. [이게 뭐야?] 초록색 식물은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묵묵히 그 자리에 있었다. 비웃음도 살아있기에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올 수 없었지만 그런 것마저 신경 쓸 여력이 되지 않았다. [우선은 살아남아야 해]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아주 뜨거운 햇빛만이 그와 함께했다. 누구도 그의 곁을 오가지 않았고 그는 묵묵히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주 아주 시원하고 풍족한 단비를. 하지만 그러한 순간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기나긴 시간이 흐르고 또 다시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초록색 식물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순간, 투두둑. 

한두 방울이 떨어지더니 쏴아- 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온 몸으로(뿌리부터 줄기까지) 비를 흡수했다. 비에게 자신의 전부를 던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최대한의 물을 몸에 품으며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기다림에 익숙한 그의 느낌으로 아마도 - 꽤 오랜 시간이었고. 인간의 시간으로 치자면 100년쯤 됐을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몸에 품은 물을 태양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실갱이하던 그는 마침내 한 송이의 붉은 꽃을 머리 위에 피운다. 너무나도 선명한 색감과 멀리까지 퍼져가는 향기. 그 꽃에 사막의 생명체들은 시선과 온 마음을 빼앗긴다. 

그렇게 꽃 한 송이를 피워낸 초록색 식물은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몸뚱아리를 내려다 보았다. 오직 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 시간일지도 몰랐다. 향기로운 꽃과 보잘 것 없는 몸뚱아리. 많은 존재가 그의 꽃을 사랑했고 그의 변화된 모습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이제 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 고요한 사막의 한 가운데. 그는 뜨거운 태양과 아름다운 별빛을 오가며 오늘도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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