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모 Jan 01. 2022

[단편] 빨대

가끔은 이런 판타지

그러니까 너무 목이 말랐다. 눈앞에는 기다란 빨대가 있었고- 컵에는 물이 찰랑거렸지만 입구가 너무 좁아 마실 수 없었다. 이런 말하면 무시당할지도 모르지만 빨대를 실제로 보는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대대로 구전되어 온 이야기 또는 낡은 사전 속에서만 만났던 좁고 긴 - 빨대. 물과 바람이이 흐르는 통로. 아무쪼록 내가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 빨대를 사용해야만 했다. 

투명한 병에 담긴 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찰랑 거리는 맑은 물이었고 달콤해 보였다. 그런데 왜 저렇게 물병 입구를 좁게 만들었을까. 의문이 생길 즈음 다시 한 번 빨대를 바라봤다. 그래 어쩌면 저 빨대를 만든 사람이 물병도 만든 게 아닐까. 무엇이 먼저였을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다시 한번 정말로 목이 마르다고 생각했다. 

빨대를 입에 물고 있는 힘껏 빨아들이는 상상을 해본다. 눈으로라도. 이렇게 하면 될까 저렇게 하면 될까.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일이라 너무 낯설었다. 하지만 물을 마셨을 때의 상쾌함 만큼은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간절하게, 저 빨대를- 바라봤다. 상상 속에서조차 아무리 세게 빨아들여도 들어오는 것은 텁텁한 바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순간을 겪은 적이 있을까?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내가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런 마음을 아는듯 모르듯 물병과 빨대는 너무나 어울리는 한 쌍의 콤비가 되어 시선을 사로잡기 적당한 곳에 놓여 있었다. 그리곤 이렇듯 분명한 감정을 나만이 겪었을 리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누구라도 저들을 마음껏 사용하는 상상을 했으리라. 

하지만 정말 실제로 저 빨대를 사용한 사람이 있었을까? 저렇듯 보기 좋지만 또 너무나도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빨대와 찰랑거리는 물이 담긴 물병.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저렇듯 물이 가득 차 있는 것만을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 아무도 없었고 그런 불가능한 일을 내가 자꾸만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혹시라도... 나에게 최초의 행운이 주어질지. 

그리고 그때. 믿기 힘든 광경이 벌어졌다. 결코 그런 행운 따위는 없다는 듯이 빨대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이다.  두 눈을 의심했지만 정말이었다. 빨대는 힘차게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주변을 잠시 둘러봤다. 잘못하면 나와 눈이 마주칠 뻔했지만 재빠르게 숨어 그에게 들키지 않았다. 빨대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평온하게 물병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아~ 시원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 목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