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눌렀던 삭제 버튼을 기억한다. 조금 더 명확히 말하자면 거침없이 힘이 들어가던 그 손가락을. 그는 얼마만큼 예상했던 걸까? 그가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일어날 파장에 대하여. 그 결과에 대한 일말의 배려라도 있었던 걸까? 나의 예상으로는, 없었을 것이다.
왜소한 몸집의 그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연약했지만 그 내면에 숨겨진 단단함은 그의 움직임 틈틈이 드러나곤 했다. 세계를 단 한 번에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힘. 그 잔인하고 거대한 힘을 그 역시도 내부로부터 느끼고 있는듯 했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상대방의 말을 우선 긍정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 결과는 늘 그의 선택대로 움직였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무력함은 곧 그의 권력이 되었다. 그의 손을 잡은 자는 웃을 수 있었고 그와 등을 돌린 자는 벼랑 끝에 서야 했다. 손을 잡지도 등을 돌리지도 않은 자는 방관했다. 끊고 맺음에 대하여 수많은 이들이 고민했다. 그의 세계는 점차 거대해졌다.
사실 조금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달라진 것은 크게 없어 보였다. 그 이전에는 누군가가 그의 자리를 대신했었으니까. 권력을 가진 자는 언제나 존재해왔고, 이번에는 그 자리에 그가 선 것 뿐이다. 하지만 어딘가 모를 차가움이 세계를 가득 채웠다. 그의 눈매만큼이나 조금 더 날카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삭제 버튼을 눌렀을 때- 모두가 조금씩은 예견했었지만 실제로 일어날 줄은 몰랐던.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사라지고 공허가 된 풍경 속에서 오직 그만이 서 있었다. 형체를 드러낸 오직 '그'라는 권력만이... 세계를 가득 채우고. 그만 남음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최초로 모든 권력이 사라져 버린. 그 세계 속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떠올렸을까? 어쩌면 無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한참의 고요가 흘렀을 때, 문득.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의 일들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