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좋아서 하는 작가 Jan 15. 2022
살림
-이병률
오늘도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일일이 별들을 둘러보고 오느라구요
하늘 맨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압정처럼 박아놓은 별의 뾰족한 뒤통수만 보인다고
내가 전에 말했던가요
오늘도 새벽에게 나를 업어다달라고 하여
첫 별의 불꽃에서부터 끝 별의 생각까지 그어놓은
큰 별의 가슴팍으로부터 작은 별의 멍까지 이어놓은
헐렁해진 실들을 하나하나 매주었습니다
오늘은 별을 두 개 묻었고
별을 두 개 캐냈다고 적어두려 합니다
참 돌아오던 길에는
많이 자란 달의 손톱을 조금 바짝 깎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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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뭘까? 요즘 떠올려보는 물음.
나는 스무 살 이후로 대학에서 희곡을 전공하며
글을 본격적으로 써왔지만
한번도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 이유는 뭘까?
나는 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나에게 시는 철학이었다. 너무나도 이상적인 세계.
그래서 어렵고, 또 현실과 동떨어진 무엇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속에 자리잡은 몇 개의 시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을 다른 시각과 언어로 풀어내는 매력적인 무엇이었다.
(이를 테면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과 같은 것.)
'제발 이러지 마...'를 읊조리게 하는
가슴을 후벼파는 몇 마디의 짧은 문장들이
조금씩 궁금해지고 있는 요즘,
집에 있는 몇 권의 시집을 펼쳐본다.
이병률 시인의 <살림>은 한 사람을 품고 있다.
어떤 사람의 일상의 한 토막을 보여주었을 뿐인데,
왠지 그 사람이 궁금해진다.
그 사람의 꿈과 이상을 알 것만 같아서이다.
어쩌면 시는 우리가 잊고 사는 무엇일지도 모른다.
현실에 치여 멀어져 버린 소중한 무엇.
그래서 반짝이고 또 그래서 먼듯한 것들.
당분간은 틈틈이 시를 들여다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