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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30. 2022

소녀, 피어나다

가족환상곡 *1

“엄마의 여고 시절은 어땠어?”

영화 '써니'를 본 뒤 엄마의 학창 시절이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엄마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성애가 잔뜩 서린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했다.

"나에겐 청춘이 없었어."

돌아온 의외의 대답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청춘이 없었단 한마디에 어쩐지 가슴이 아렸다. 영화 속 그녀들처럼 엄마도 그때의 시간을 막연히 그리워할 줄 알았다. '나 때는 말이야~'로 말문을 열며 방언 터지듯 추억담을 줄줄이 늘어놓을 줄 알았다. 그 시절의 불안도, 흔들림도, 그저 아름다웠다며 눈물을 글썽일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영화 '써니'는 적어도 엄마에겐 판타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 장녀로 태어나 일찍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이른바 'K 장녀'가 우리 엄마다. 엄마는 연필 대신 호미와 낫을 먼저 손에 쥐었고, 책상 앞에 앉는 날보다 산에 오르는 날이 더 많았다. 마치 나무하는 나무꾼처럼 말이다. 한참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에, 까르르 웃으며 청춘을 만끽할 고운 나이에 맏이라는 이유로, 딸이라는 이유로 어떤 불합리함도 홀로 참고 견뎌야 했던 엄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런 엄마에게도 숨통 트일 무언가가 있었으니 바로 '소풍'이었다. 소풍은 시궁창 같은 현실을 잊게 해줄 유일한 오아시스였다. 소풍날만큼은 여느 아이들처럼 마음껏 웃고 떠들며 뛰어놀 수 있었다. 가뭄에 콩 나듯 가는 소풍이었지만 그마저도 소중했기에 그날이 다가올 때면 잔뜩 들떠 잠을 설쳤고 혹시나 비가 올까 열두 번도 더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친구들과 실컷 노는 날.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날. 소풍은 그 당시 엄마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사치였다.


엄마의 소풍 도시락은 감자가 듬성듬성 든 꽁보리밥과 무짠지가 전부였다. 부잣집 친구가 싸 온 소고기 김밥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자신의 도시락이 마냥 창피해 애꿎은 뚜껑만 열고 닫기를 반복하며, 언젠가 꼭 소고기 김밥을 싸 오리라 다짐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흰쌀밥 위에 소고기, 우엉, 달걀지단을 한껏 올린 김밥을 배가 터지도록 실컷 먹는 게 소원이었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속으로 울었다. 혹시나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챈 건지 엄마가 나를 꼭 끌어안았다. 익숙한 포근함의 냄새가 퍼지며 순식간에 뭉근한 온기가 마음 구석구석 짙게 배었다. 가엾고 불쌍한 우리 엄마. 지나온 젊은 날에 얼마나 한이 맺혔을까. 서러웠을까. 분통했을까. 그 심정을 얄팍하게나마 헤아려보자니 코끝이 시큰해지며 닭똥 같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한창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벚꽃이 봄바람에 살랑거릴 때면 우리 가족은 소풍을 간다. 김밥도, 마음도 돌돌 말아. 소풍 전날이면 엄마는 자기가 가진 옷 중 제일 아끼는 옷을 꺼내 다림질을 하고, 신고 갈 신발도 미리 꺼내어 가지런히 놓는 등 모처럼 찾아온 설렘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이른 새벽, 요리와 담을 쌓고 지내던 나는 슬금슬금 주방으로 들어섰다. 이번 소풍엔 나도 한번 정성을 쏟아 보고 싶었다. 소고기 김밥을 만들 참이었다. 졸음 가득한 눈을 끔뻑이며 밥솥에 쌀부터 안쳤다. 요린이라 불리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로 요리에 재능도, 흥미도 전혀 없던 나는 김밥을 글로 배우고자 핸드폰으로 레시피도 몇 개 찾아놨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느낌 가는 대로 만들자니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라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작해야 했다. 침착하고 신중하게 김밥 재료를 손질해 본다. 굼뜨다. 이러다간 해질녁에나 완성할 것 같다. 순간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모두를 위해 그냥 사 먹는 게 좋지 않을까 격렬한 내적 갈등에 휩싸였지만 혼란은 금방 가라앉았다. 김밥 하나에도 쩔쩔매는 나를 보니 매일 집밥을 책임지는 엄마가 새삼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주방은 금세 너저분해졌다. 고든 램지가 버럭할 난장판에도 나의 열 손가락은 쉴 새 없이 김밥 재료들을 다듬어 갔다. 수요 없는 공급이 될 우려와 달리 눈치 없는 열정은 부스터를 단 듯 당최 멈출 줄 몰랐다. 숨을 고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식탁 위에 소고기와 나머지 재료가 정갈한 자태로 평형을 이루고 있었다.  


너무 열중했다. 그녀의 노골적인 시선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어느새 내 뒤에 바짝 붙어 선 엄마는 나직한 목소리로 단호히 말했다.

"칼."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총총 뒤로 물러섰다. 어떠한 아쉬움도, 서운함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90도로 허리를 숙인 채 정중히 칼을 건넸을 뿐. 식탁의 왼편 구석엔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김밥 재료들이 놓여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설거지나 해야겠다.


잽싸게 앞치마를 둘러맨 엄마는 고슬고슬하게 지어낸 밥 위에 다진 소고기, 우엉, 달걀지단, 당근, 시금치, 단무지를 올려 빠른 손놀림으로 김밥을 말았다. 소고기는 김밥의 지분을 80%나 보유했다. 입안에 단침이 금세 그득 고였다. 삽시에 속 재료를 꽉 채운 육감적인 김밥이 나를 유혹했다. 엄마는 지체 없이 불에 살짝 달군 칼로 김밥을 리드미컬하게 썰었다. 꽁다리파인 나는 두툼한 끄트머리를 얼른 집어 입으로 직행했다. 씹을수록 세로토닌이 마구 분비됐다. 엄마 역시 '내가 이 맛에 살지~'라며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띠었다. 그런데 못내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 김밥 이면에 엄마의 묵은 한과 서러움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넉넉한 도시락통에 김밥을 차곡차곡 담아 녹음이 우거진 산으로 향했다. 산 중턱 적당한 그늘 아래 돗자리를 폈다. 네모난 작은 공간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엄마와 나는 돗자리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사이로 따스한 햇볕이 쏟아졌다. 우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곤 어떤 말들을 나직이 주고받았다.

“엄마는 하고 싶은 게 뭐야?"

“글쎄..."

"없어?"

"아니, 너무 많아서..."

다행이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말간 얼굴을 한 엄마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림도 그리고 싶고, 영어도 배우고 싶고, 식물도 키우고 싶고, 핀란드도 가고 싶고..."

"핀란드? 왜? 거기 가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

"세계 여행 하는 티비 프로 있잖아. 거기서 봤어. 그 나라는 완전히 설국이더라."

"거기 진짜 아름답지. 그 경관에 나도 압도당하고 싶다."

"오로라도 봐야 해. 얼마나 신비로울까."

"우리 엄마 소녀네, 소녀..."

아이처럼 해맑은 엄마의 모습에 하마터면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엄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하나씩 해보리라 포부를 밝혔다. 나는 '지금 당장 시작하면 되지'라며 쉽게 말했고, 엄마는 '나중에'라는 말만 반복했다.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엄마의 날개를 꺾고 발목에 족쇄를 채운 건 아닌지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 조금만 더 기다려 봐.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

원래 프러포즈는 유치하고 뻔한 게 제일 좋은 거다.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던 엄마가 싱겁게 웃었다.

"근데 내 나이에 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쪼금 자신이 없네."

나는 엄마의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뭐든 하고 싶은  중요한 거야. 나도 엄마랑 똑같아. 하고 싶은  많은데 막상 시작하려 불안하고 두렵고, 근데 한편으론 설레고 기대되고 신나. 다들 비슷할 거야. 시작이 반이라잖아."

나는 엄마의 손을 덥석 잡곤 말을 덧붙였다.

"겁먹지 마. 시작도 전에 뭘 쫄고 그래. 나는 엄마가 매일 꿈꾸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사소한 어떤 거든. 꿈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잖아."

"그럼 이번 주에 꽃부터 심어 볼까?"

반짝거리는 햇빛을 머금은 듯 엄마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하고 싶은 게 많다는 엄마가 참 고맙다. 세상에 완벽한 어른도, 완전한 어른도 없다. 하지만 성장하는 어른은 있다.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아 오랜 시간 외로웠던 소녀는 어느새 예순이 넘었다. 그리고 예순이 넘은 소녀의 곁에는 엄마의 역할을 자처하는 딸이 있다. 여느 모녀가 그렇듯 엄마와 나 역시 셀 수 없는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애증의 관계를 이어왔다. 때로는 절친 같고 때로는 원수 같고, 한없이 애틋하다가도 한순간 으르렁거리고, 그러다가 또 죽이 척척 맞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관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엄마와 내가 서로의 위로라는 것이다. 나는 간절히 바란다. 엄마의 나날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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