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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30. 2022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가족환상곡 *2

평생 해 온 음악을 그만두고, 잠깐 직장 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 내 생애 첫 직장이었다. 어렵사리 들어간 만큼 무리한 야근도 불사하며 정말 소처럼 일했다. 인턴으로 입사해 정규직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6개월의 인턴 생활이 종료되고 드디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날 왠지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해고 통보를 받았다. 구조조정 칼바람에 쓸려 나는 순식간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것도 하필이면 정규직 계약서를 쓰는 날 말이다. 물에 젖은 듯 온몸이 축 늘어졌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여니 달뜬 얼굴의 엄마 아빠가 나를 반겼다.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회사에서 잘렸다는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내 입에 빗장을 걸어 잠갔다.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 그 누구도 내가 실업자 신세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 바람에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야 했다. 도서관은 물론 서점, 카페, 만화방 등을 전전하며 취업 노예의 삶을 살아갔다. 도무지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리멸렬한 나날이었다. 누군가는 다시 음악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은 도통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음악을 전공한 나는 긴 시간을 무명으로 버텨왔다. 수많은 에세이가 강조하듯, 괜찮아 잘 될 거야, 잘하고 있어 따위의 자위를 되뇌며 그저 맹목적 희망을 좇았다. 하지만 짙게 드리워진 무명의 그늘은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저작권료랍시고 통장에 찍힌 돈 몇 푼을 볼 때마다 쓸모없는 인간이란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음악이고 뭐고 꼴도 보기 싫어졌다. 다시는, 두 번 다시는 음악 근처에도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웬걸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느새 건반 위에 올려진 열 손가락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느 새벽, 답답한 마음에 내 몸집만 한 캐리어를 끌고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캐리어 안에는 37건반, 휴대용 앰프, 마이크, 간이 의자가 들어 있었다. 택시를 타고 홍제천으로 향했다. 홍제천 인공 폭포 근처에 다다르자 박하사탕을 머금은 듯한 새벽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텅 빈 홍제천은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공포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무서움도 잠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버스킹을 준비했다. 첫 곡은 ‘청춘’이라는 자작곡이었다. 담담하게 노래를 불러 나갔다. 머릿속엔 영사기를 돌린 듯 내가 살아온 면면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난데없이 왈칵 슬픔이 차올랐다. 나는 얼마간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나를 비춰 줄 조명도, 내 노래를 들어줄 관객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건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음 노래를 시작하려던 찰나, 낯익은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다름 아닌 우리 집 할매였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내 앞에 우뚝 선 할머니를 보자 긴장한 탓인지 온몸이 뻣뻣하게 경직되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할머니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냥 바람 좀 쐬려고. 그러는 할매는 여기 어떻게 왔어?"

"걷다가 쉬었다가 걷다가 쉬었다가 하면서 슬슬 왔지."

한참 불면증에 시달리더니 할머니도 어지간히 갑갑했나보다. 아무튼 이렇게 마주친 이상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할머니는 버스킹 장비들을 슥 보더니 "이건 뭐야? 노래 부르는 거 아니야?"라며 관심을 보였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할머니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할매, 엄마랑 아빠한텐 비밀이야. 절대 말하지 마. 알았지?”

“참, 내가 그걸 왜 말해. 알았으니까 한번 불러봐. 좀 들어보게.”


사실 나는 무대 공포증이 있다. 희한하게도 가족 앞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가족 중 누구도 음악하는 내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이리 떨리는지, 집중은커녕 아득해지는 정신 줄을 붙잡기도 바빴다. 나에겐 정말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할머니는 해맑게 웃으며 내가 노래 부르기만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곤 떨리는 목소리로 동요 ‘오빠 생각 부르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노래를 불렀다. 반응이 궁금하여 슬쩍 눈을 떠보았다. 아, 다시 한번 울컥하고야 말았다. 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동시에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할머니는 "잘한다, 잘해"라며 열띤 박수를 쳤다. 그때부터 에라, 모르겠다며 오직 할머니만을 위한 단독 공연을 시작했다. 

“할매, 아리랑 알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뭔지 알겠지?”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우리는 마치 오래 전부터 손발을 맞춰온 듀오처럼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할머니는 내 곁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양팔을 번쩍 올려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은 애잔한 꽃 같기도 했고, 고독한 삶을 벗어나려 날갯짓하는 작은 새 같기도 했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메마른 등을 토닥였다. 오랜만에 웃음꽃이 활짝 핀 할머니 얼굴을 보니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가 못내 아쉬웠다. 무엇을 할까 고민 끝에 나는 할머니 손을 잡아끌고 편의점으로 갔다. 얼마 후 편의점을 나서는 우리의 손엔 빵빠레가 들려 있었고,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근처 놀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할머니는 그네에 엉거주춤 앉았다. 나는 그 그네를 살살 밀었다. 작은 움직임에도 깔깔대며 웃는 할머니의 손엔 여전히 빵빠레가 들려 있었다. 무척 신나 보였다. 꼭 천진무구한 아이 같았다. 


“나는 나중에 커서 유명한 뮤지션이 될 거야.”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도 무대의 주인공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나 고백하자면, 내 삶의 가장 치열했던 시기는 부끄럽게도, 순수한 열정 그 자체였던 나의 유년 시절이 아닌가 싶다.   


짱구 아빠는 말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가면 어른이 돼서 힘들어진다고. 지금의 내가 딱 그러하다. 영원할 줄 알았던 청춘은 시나브로 소멸해 가고, 그러는 사이 나는 아직 덜 자란 반쪽짜리 어른이 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내 인생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때로는 뻔한 말이 그 어떤 말보다 위로를 준다. 과거 자위라 일컫던 그 말. '괜찮아, 잘하고 있고 잘 될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 


오늘은 베리 매닐로우의 'When October Goes'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해야지. 달콤 쌉싸름한 커피가 고단한 마음을 달래준다. 날씨는 어떨까. 창문을 활짝 열어야겠다. 어떤 날씨라도 상관없다.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비가 오면 오는대로 해가 나면 나는대로 나는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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