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흡수하는게 뭔지 아실까요?

나쁜 습관 없애기

나= 감정을 흡수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깨달았다.
다시 말해, 감정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라 대신 살아주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것.
무려 쉰두 해 동안.
엄청난 참을성이다. …아니, 어쩌면 무지함이었을까?


나는 ‘공감’이라는 이름 아래,
실은 타인의 감정을 느끼기보다, 맞추기에 바빴다.
그 사람의 감정이 편해지면, 내가 안전해질 거라 믿으며.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로 표현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 대신 눈치로, 분위기로, 침묵으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집안의 공기를 읽어야만 했다.


감정에 따라 분위기가 급변하던 집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그 안에서 사랑받기 위해,
나는 타인의 감정을 먼저 읽고, 맞춰주고,
스스로를 뒤로 미루는 방식을 나만의 생존법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그건,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삶의 방식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내 모습을
나는 오랫동안 "공감을 잘하는 사람", "마음이 여린 사람"으로만 얕게 알고 있었다.


나를 똑바로 들여다보지 못한 상태로
‘여림’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던 자기 상실이
너무 답답하고 안쓰럽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첫째. 타인의 감정을 느끼되, 내 것으로 만들지 말자.

감정에도 경계선이 필요하다.
내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게 타인의 인생이다.
그 고통은 그 사람의 몫이고, 나는 나의 몫을 지면 된다.


둘째. 말하지 못했던 나의 감정을, 이제부터는 말로 꺼내기.


누군가 내 선의와는 다른 결과가 난 일에 대해 ‘사과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도 당사자가 아닌 제 삼자에게서..
억울하고 당황스러웠다.
그 감정을 나누고 싶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지만,
결국, 또다른 형식의 똑같은 반응, 똑같은 왜곡이었다.


이런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도모한 난처한 상황
당혹감, 실망감, 두려움, 슬픔이 동시에 몰려드는
복잡한 하루를 통과했다.


셋째. 함께하되, 더는 기대하지 않겠다.

현실적인 이유로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면,
이제는 마음의 기대를 거두기로 했다.
그동안 내가 겪은 많은 실망은,
어쩌면 ‘근거 없는 기대감’이 낳은 감정의 착시였는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건
서운함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방식이 되기도 하니까.


지금 나는, 감정을 흡수하지 않고
바라보고, 나누고, 놓아보는 훈련 중이다.
그것이 쉰두 해 만에 내 삶에 찾아온,
아주 늦었지만 온전한 변화의 시작이다.

작가의 이전글Will you marry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