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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Dec 11. 2022

내가 피해자라고 느껴진다면

부모님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오늘 아버지와 아버지 지인분, 나 이렇게 셋이서 식사를 했다. 이상하게 그 지인분과 있으면, 내 편을 들어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 가족들에게 쌓였던 불만을 하소연하곤 했다. 내 얼굴에 침 뱉기라는 걸 알면서도 뭔가에 홀린 듯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었다. 오늘의 화두는 오빠로 시작되었다. 나에게는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는데, 지금은 꽤나 잘 지내지만 사춘기 시절엔 남보다도 못한 사이였다. 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막내딸이었고, 오빠와 다툼이 생기면 아빠가 내 편을 많이 들어줬기에 우리는 친해질 수 없었다. 나는 잘못을 저질러도 승기를 잡으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고, 오빠는 나를 볼 때마다 억울하고, 꼴 보기 싫었겠지. 


인정한다. 나는 어린 시절 꼴리는 건 다 해야 직성이 풀리고, 오빠가 나보다 좋은 걸 가지면 베알이 꼬여 뒤집어지는, 한마디로 지랄 맞은 성격이었다. 하지만 지랄견이 본인의 행태가 행패인 줄 모르고 장판을 찢어발겨놓듯, 나도 그저 생긴 대로 지랄 맞게 살았을 뿐이다. (지랄병은 학창 시절 따돌림으로 완치되었다.) 하지만 불쌍해 보이는 오빠도 나보다 참을성이 많았을 뿐 같은 혈통이었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 현란한 혀 드리블로 내 가슴에 대못을 박아 넣고, 한 번은 나를 구석에 몰아넣고 발길질을 한 적도 있다. 지금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하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과 별개로 오빠에게 발길질을 당했다는 '사실'은 어린 나에게 상처였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그랬구나, 그건 오빠가 잘못했네. 네가 질투가 많고 성격이 지랄 맞았지만 때리는 건 잘못된 건데."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내가 하는 말들을 믿어주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들은 모두 조작된 기억이라고 했다. 오빠는 착했다고, 순했다고, 마음이 넓었다고, 내가 욕심이 많았다고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젠장.


오빠에 대한 화두가 마무리되고, 나중에는 '편식'이라는 주제로 대화가 바뀌었다. 점심 메뉴에 '생 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아빠와 관련된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아빠는 어려서부터 우리들의 편식을 고치려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셨다. 어린 시절의 나는 겁이 많아서 낯선 음식은 일단 거절부터하는 아이였다. 거절하다가 한 번 먹어 보고는 잘 먹었던 경험이 많아 '뒷북 걸'이라 불리곤 했는데, 아빠는 나에게 '굴'도 그런 것일 거라 여기셨었나 보다. 굴을 먹어보라고 강요했다. 나는 먹기 싫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일단 먹어보고 맛없으면 뱉으라기에 결국 입에 넣었다. 울컥하고 올라오는 구역질에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가려하자, 아빠가 말했다. "위에다 뱉어."


나에게는 그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선지, 소머리국밥, 곱창, 닭발, 양꼬치 등 호불호가 있는 음식들은 잘 먹지만, 아빠가 강요했던 음식들은 지금도 여전히 못 먹는다. 하지만 아빠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매번 똑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1) 먼저 본인이 젊은 시절 편식 때문에 얼마나 고생스럽게 살았는지, 군대에서, 여행지에서 겪었던 일화를 늘어놓는다. (2) 그러고는 본인의 의도에 대해 설명한다. 내가 뒷북이 심하니까, 그 거부감을 없애고 새로운 걸 받아들일 줄 아는 태도를 길러주기 위해 그랬다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많이 나아진 거라고. <일단 먹고 뱉어(구라)> 밥상머리 교육법이 효과적이라서 새로운 음식, 일, 경험을 시도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건지, 원래 그런 아이인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빠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어서 말했다.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야! '그랬구나, 그게 상처가 됐구나. 그렇게 느꼈었다니 미안하다.' 이 한마디면 되는데, 진짜 절대로 그 말을 안 해!" 아빠도 말했다. "너도 매번 레퍼토리 똑같거든?"  


이때까지는 가슴이 답답해 한 숨을 내쉬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을 들으며, 표정관리가 안되는 걸 느꼈다. 아빠가 또! 내 기억이 다 잘못된 기억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대부분은 내가 기억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어려서부터 카메라로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기억하는 거라고. 절대 그럴 리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그 상상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그리고 엄마와 이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내가 아주 이상한 애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이다. 모두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가족이 아닌 제3자 앞에서 이야기한 게 처음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요동치는 감정이 혼란스러웠다. 불쾌함, 불편함, 억울함,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러고선, 어쩌면 정말 내 기억이 조작된 기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실제 기억에 꿈속 기억이 섞이거나 상상을 통해 변질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머리는 내 기억이 맞다고 주장하고, 내 가슴은 억울하다고 말하니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혼란에 이어지는 감정은 의심이었다. 이게 모두 나의 피해의식 때문에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어쩌면 지금껏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나 스스로 상처를 만들어 받은 걸 지도 모른다는 의심. 나에게 어느 정도 피해의식이 있다는 건, 스스로도 느꼈던 바였기에 의심은 가속화되었고, 우울해졌다. 혹시 이게 바로 가스 라이팅..?


그래 아빠 입장에선 억울할지도 모른다. 내 머리가 기억하고, 가슴이 답답해하듯 아빠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정답을 가릴 길이 없으니 평화를 되찾으려면 어느 한쪽이 져야 한다. 나는 내가 못하는걸 아빠에게 하라고 우기고 있는 꼴이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아빠를 인정해보기로 했다. 내가 틀렸다고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두고 아빠의 입장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빠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내 기억이 조작된 걸 지도 모르겠어. 그런 거라면, 내가 과거 얘기를 꺼내면서 아빠가 잘못했으니 사과하라는 식으로 말할 때마다 많이 당황스럽고 답답했겠다. 아빠는 나를 많이 사랑했고, 좋은 의도로 훈육한 거였는데, 자꾸만 아빠를 딸한테 상처 준 가해자로 만드니까 억울하고 서운했을 것 같아."


아빠를 인정하고 나니 아빠가 느꼈을 감정들이 보였다. 아빠의 억울함이 느껴졌다. 내가 먼 훗날, 부모가 된다면, 그러고 내가 사랑으로 키운 자식이 나를 가해자 취급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아빠가 자신의 의도를 끝없이 설명하는 이유는 '세상에 완벽한 아빠는 없으니, 실수를 이해해줘'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의도는 좋았다고, 널 상처 주려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럼 이번엔 내 마음을 돌볼 차례다. 여기서 끝낸다면, 응어리는 또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져 있을 테니까.


"아빠랑 소모적인 대화 하느라 많이 힘들었겠다. 가족이 아닌 외부인도 있는 상황에서 이런 얘기를 나눴으니 아빠도 너도 자신이 옳다는 걸 더 강하게 증명하려고 했는지도 몰라. 나는 네 마음 다 알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 기억이 잘못된 거라고 부정당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어. 말도 안 되는 괘변을 늘어놓으며 본인 좋은 쪽으로 말하고 있는 건 아빠라고, 기억이 조작된 건 내가 아니라 아빠 아니냐고 소리치고 싶은 거 충분히 이해해. 혹시 지금 내가 가스 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는 것도 당연해. 반복해서 내가 잘못된 거라는 말을 듣고, 타인에게서까지 내 생각이 왜곡된 거일지 모른다는 반응을 봤는데 어떻게 괜찮겠어? 좋은 의도라도 상처를 줄 수 있어. 마치 나무를 아끼려고 개발한 비닐봉지가 극심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세상에 나쁜 개가 없듯, 세상에 나쁜 아이도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 유년기의 행동은 부모님 탓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유년기 안하무인 지랄병에 걸린 것도 오빠에게 저지른 잘못된 행동에 대해 제대로 혼나지 않고 편애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 내가 저지르는 일은 온전히 내 탓이다. 그러니 성인이 된 지금, 갈등을 회피하거나 남 탓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면 그건 내 문제가 된다. 유년기에 오빠에게 맞은 것과 아버지의 강압적인 훈육방식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것은 미성숙한 나에게 발생한 '사건'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사건이 일어난 당시보다 20년 가까이 성장했으니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언제까지 어린 시절 일어난 그 상황의 기억과 감정의 노예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같은 상처를 반복해서 주고받지 않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To. 아빠

"아빠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사랑하는 사이에도 상처를 줄 수 있잖아. 우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니까. 내가 같은 기억을 수십 년간 반복해서 말하는 건, 그 기억이 조작되고 과장되었을지는 몰라도, 내 마음에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일 거야. 그리고 그 상처를 반복적으로 부정당하고, 인정받지 못해서 이렇게 아빠를 괴롭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인정받고 싶어서. 그러니까 아빠도 인정해줬으면 좋겠어.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빠가 나한테 내가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인 건 사실이니까. 그게 아직까지 네 마음에 맺혀있을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글을 쓰기 전까지는 내가 상처받은 피해자였는데, 지금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동등한 '사람'이 되었다. 상처받아 우는 피해자의 모습보다는, 상황을 파악하고 맞짱 뜨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는 파이터의 모습이 더 멋지다. (물론 아빠를 주먹으로 때리겠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상처가 덧나지 않고 아물 수 있다. 나도 내 기억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과장하고, 또 제3자에게까지 말하며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몰았으니 아빠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사과하고, 사과받고, 훈훈하게 갈등이 마무리되면 좋겠다. 다만, 면전에서 저 긴 이야기를 할 자신은 없으니, 카톡으로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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