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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Dec 15. 2022

나에게 친절했던 독일인 가족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

    우리들은 추억을 먹고 사는 거라 했다.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만든 추억은 그 색이 아주 강렬해서, 오랜 세월 갉아먹어도 색이 옅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했다. 나의 일상은 어쩌면 여행을 위해 마련된 활주로였다. 활주로가 있어야 비행기가 날아갈 수 있는 것처럼,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여행자금이 필요하고, 또 일상의 무료함이 있어야 여행의 자극이 즐거움이 된다.


    나에게 여행의 묘미는 사람이었다. 그 지역의 미술관을 가는 것도, 낯선 풍경 속에서 사색에 잠기는 것도 참 좋아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 알아가는 게 최고의 유희였다. 낯선 공간에서 나의 감각적인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면, 낯선 사람에게서는 내가 가지지 못한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어떤 세상에서 어떤 캐릭터로 어떤 즐거움을 쫓으며 사는지, 그가 겪은 우여곡절은 무엇인지, 어떻게 극복했는지, 아니면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 중인지!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지 않고, 나의 세계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연이 더 돋보였다. 뭐든 쉬우면 재미도, 소중함도 덜한 법이다.


무조건적인 선의

    여행에서는 즐거운 경험도, 힘든 경험도 모두 추억이 되었지만 언제나 힘든 경험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편이었다. 그리고 힘든 기억 중에서도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기억이 가장 오래, 그리고 선명한 추억으로 남았다. 혼자 유럽 여행을 할 때였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위치한 숙소에 체크인을 마치고, 독일 쾨니히제 호수에 갔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간이라 미리 알아봤던 버스 운행이 종료되어 택시를 타고 호수까지 갔다. 버스가 끊긴 시간이라서인지 관광객이 몇 팀 없었고, 한적했다. 여유롭게 호수 풍경을 감상하고, 청둥오리를 구경했다. 큰 호수를 한 바퀴 천천히 걸리며 생각도 정리하고, 호수 근처 농장에 사는 가축들과 인사도 하고, 산책로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오리 가족도 만났다.


산책로를 가로지르는 오리가족

한참 간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주유소에 붙어있는 콜택시 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맙소사.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한참 간 주유소 앞에 서서 전화를 하고 있으니, 지나가던 행인이 거기 이제 영업 안 한다고 말해주었다. 콜택시 회사가 망했다는 건지, 오늘 영업이 끝났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망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해가 지고 나니 날은 점점 추워졌고, 바람은 매서워졌다. 한참 동안 찬바람을 맞으며 우버를 호출하고, 교통수단을 찾았지만 숙소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쾨니히제 호수가 도심에서 떨어져 있었기에 나 하나를 위해 먼길을 달려올 택시는 없던 것이다. 어둠이 점점 더 내려앉고, 밤이 되니 공포감이 몰려왔다. 더 이상 늦어지면 신변에 위험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시작된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나쁜 범죄에 연루되어도, 어린 동양인 여자애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까지 미치니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때 마침 주유소 마트 앞에 차 한 대가 섰고, 백인 아저씨가 내렸다. 마트에 들어가려는 아저씨를 붙잡고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딸이 영어를 할 줄 안다며 차 뒷문을 열어주었고, 열 살 정도 돼 보이는 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딸의 통역으로 내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된 독일인 아저씨와 아줌마는 흔쾌히 차에 타라고했다. 숙소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차에 공간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운전석엔 아빠, 조수석엔 엄마, 뒷자리에는 두 자매가 앉아있었으니, 남은 자리는 딱 한자리였다. 천만다행이었다. 두 딸은 넓게 앉아있던 자리를 낯선 동양인 여자와 나눠 앉게 되었음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차에 타서 가장 가까운 역에 내려달라 했지만, 자신들도 잘츠부르크를 지나간다며 숙소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영어를 할 줄 몰랐음에도, 내가 놀라 보여 달래주려던 건지, 딸의 통역 도움을 받아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어린 자매에게 나 때문에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니, 두 손을 저으면서 자기들은 자매라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한참 동안 대화를 하다 보니 잘츠부르크에 도착했고, 나는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동전지갑에서 유로를 꺼내 딸에게 건넸다. 실랑이 끝에 소녀의 손에 꼬깃꼬깃 접힌 돈을 건네주고 올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앉으니 오늘 하루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오만가지의 감정이 교차했다. 호수에 도착해서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산책을 즐길 때의 만족감, 뒤뚱뒤뚱 걸어가는 오리가족을 만났을 때의 감동, 교통편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의 불안감과 당혹감, 잡히지 않는 우버를 반복해서 호출하며 느낀 초조함, 추운 길거리에서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서 움, 범죄의 타깃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그리고 독일인 가족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과 안도감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희로애락이 절절한 하루였다. 정말 길디 긴 하루였다.


아직도 그 차의 분위기와 상냥한 그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4년 전의 일이지만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마 14년이 흘러도, 24년이 흘러도, 그날의 기억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펜션을 찾아온 외국인 손님들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행동한다. 누군가는 과잉친절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받은 친절을 다른 이들에게라도 돌려주어 보답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는 여행의 추억이 스며들어있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 힘이 없을 때, 인류애가 사라졌다고 느껴질 때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뜻밖의 곳에서 위로와 감동, 인류애를 얻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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