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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Dec 22. 2022

어제의 나는 죽었다

게임캐릭터처럼 살기

나는 후회와 불안 속에서 살았다. 게으르게 흘려보낸 과거의 시간을 후회하고,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이하는 미래를 불안해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후회 없이 완벽한 선택도, 완벽하게 준비된 채로 맞이하는 미래도 없다. 어떤 선택이든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따르기 마련이고, 어떤 미래든 예측할 수 없으니 완벽한 준비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앞에 두고, 나는 왜 이렇게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일에 매달려 고통받았을까? 


나는 매일 새로 태어나고, 하루 끝에 죽는다.



그래서 매일 죽고, 새로 태어나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 얽매일 필요가 없다. 어제의 과오에 후회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시 태어났으니 새롭게 잘 살면 되니까. 오늘의 실수에도 관대해질 수 있다. 어차피 곧 죽을 테니까. 내일을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하루살이처럼 하루만 살고 죽는데 내일이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게임을 할 때, 내 캐릭터가 이 스테이지를 어떻게 깨고 넘어갈지에만 집중한다. 전 스테이지에서 한 실수를 후회하거나, 다음 스테이지에서 일어날 일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전 스테이지를 깨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스테이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할 뿐이다.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제 내가 한 행동과 말을 후회한다고 해서 오늘이 달라지지 않는다. 내일 일어날 일을 걱정한다고 해서 오늘의 내가 더 강해지지도 않는다. 어제는 무사히 지나갔으니 다행이고, 내일 일어날 일은 예측할 수 없으니 흥미롭다. 오늘은 오늘의 삶에, 오늘의 캐릭터에만 집중하면 된다.


<오늘의 스테이지>

오늘 아침 나는 응애하고 태어나자마자 사색이 되었다. 7시에 일어나 온라인 모임에 참여해야 하는데 알람을  듣지 못하고 8시 반까지 잤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휴대폰에는 모르는 번호로 다섯 통이나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불현듯 내가 어제 주차 자리가 없어서 이중주차를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 X 됐다..' 하지만 태어난 지 5분 만에 판을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분히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걸어 공손히 사과했다. 상대는 괜찮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당장 기프티콘을 결제해서 문자로 보냈다. 비로소 뒤틀린 몸이 풀렸다. 그러고는 늦게나마 온라인 모임에 들어갔다. 휴, 태어난 지 10분 만에 미니게임 한판을 끝냈다.


미니게임을 마치고 독서모임에 갔다. 애석하게도, 지난주의 나는 몹시 게을렀기에 책을 읽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죽은 이는 말이 없다. 내 캐릭터가 모임에 가서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싶어 했기에, 감지 않은 머리 위에 대충 모자를 눌러쓰고 책방으로 갔다. 그렇게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오전 스테이지가 종료되었다. 


과거의 내가 본다면, 오늘 오전 스테이지는 엉망진창이다. 스스로를 한심해하며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 새로 태어나는 나는 스스로에게 관대하다. 망할뻔했지만 어찌어찌 퀘스트는 달성했으니 아무 문제없다. 우리는 게임하다가 망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재밌으려고 하는 거니까. 나는 우리가 인생도 게임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기왕 사는 거 재미있게 살면 좋으니까!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오늘의 퀘스트로, 심신에 데미지를 주는 상사를 보스몹 캐릭터로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한판의 게임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캐릭터 상태를 체크하며 H.P(체력)가 떨어졌으면 약물(보양식)을 먹여주거나 휴식을 취하고, C.P(전투력)가 떨어졌으면 운동이나 공부를, 데미지가 높아졌으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취미나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이다. 


게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게임에는 실패와 재도전이 있지만, 인생에는 실패와 재도전이 없다는 것이다. 하루가 끝나면, 자동으로 스테이지가 클리어된다. 스테이지가 너무 쉽게 넘어가서 재미가 없을 수 있지만, 우리가 하는 게임이 프린세스메이커 또는 프린스메이커라고 생각해 보자. 게임을 할 때는 캐릭터 성격이 거지 같고, 모자라보여도 좌절감과 수치심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성격을 하나의 힌트로 여기고, 얘는 이렇게 반응할 테니까 이런 훈련을 시켜야지, 이게 부족하니까 이걸 공부시켜야지 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우리도 우리의 캐릭터를 인내심을 갖고 잘 키워내 보자. 매일 한 스테이지씩 깨 나가면서 성장시키자. 우리들은 모두 공주와 왕자 캐릭터다. 다만 신분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다마고치나 개복치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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