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법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 있다. 주인공은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에게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목적을 향해가는 여정에 장애물이 있어야 스토리가 이루어진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오랫동안 목적이 없는 삶을 살았다. 바다 위를 표류하는 돛단배처럼 넘실거리는 파도결을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목표를 물어보면, 나는 깊은 정글숲 한가운데 버려졌다. 맨 손으로 끊임없이 자가증식하는 생각 덤불들을 쳐내야 했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이 나의 삶을 가리키는 듯했다.
이 세상이 한 편의 영화라면, 주인공의 목적은 뭘까? 또 그 목적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뭘까?
가끔씩 수면 위로 떠오르는 강렬한 욕구가 있긴 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욕구. 눈치채지 못했을 뿐, 이 또한 목적이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상태가 되고 싶다는 게 나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감사하게도 비수기라 펜션일이 적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성수기만큼이나 바쁘게 살고 있다. 왜일까?
나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불안'이었다.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방해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나를 못살게 굴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간이 흐르면 포트폴리오가 쌓이고, 연봉이 올랐다. 하지만 지금의 삶은 가시적인 결과로 스스로를 다독일 수 없었다. 그래서 자꾸만 발을 동동 굴렀다. 끊임없이 불평하고, 자책하며 나를 채찍질했다.
나의 평화를 깨는 또 다른 장애물은 '모호함'이었다. 전에는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연설명이 필요했다. 내가 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동해에 왔는지, 왜 부모님 일을 돕고 있는지 설득하려 했다. 상대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모호한 상태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태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변명을 했다.
나의 목적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다.나는 지금 등대를 찾아 헤엄치는 중이다. 표류하는 게 아니라 헤엄을 쳐 등대를 찾는 중이다. 때때로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어둠과 안개에 가려져 앞이 안 보이는 두려움에 휩싸이곤 하지만, 내 안에 등대의 불빛이 있다. 파도가 잔잔해지고, 어둠과 안개는 걷히기를 기다리면 될 일이다.
당신은 어떤 캐릭터를 가진 주인공인가? 주인공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나? 그 목적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목적이 없는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잘 들여다보면, 당신의 삶 또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