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웨이 week1 - 다섯 가지의 삶
작년 초에 시도했던 아티스트웨이를 다시 한번 해보려 한다. 창조성이 다시 깊은 기저로 숨은 것 같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쓰며 무의식을 만나고, 내면의 어린아이를 데리고 신나게 놀고, 12주간 창조성을 깨우는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다시 창조성이 깨어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가상의 인생 살기'이다. 나에게 현재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세상에 평행우주가 존재한다면, 나의 상상은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최근 연기수업을 들어서였을까? 연기자로 사는 삶을 그려보고 싶다. 화가, 여행가, 심해연구자, 파티셰의 삶도 상상해보자.
연기자
연극이 시작하기 5분 전이다. 대기실에 앉아 호흡명상을 하며 감정을 컨트롤하고있다. 설렘과 긴장감이 반복된다. 무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무대가 시작되고 나서는 아드레날린이 극도로 분비된다. 조명이 꺼지고, 웅성이던 관객석이 조용해졌다. 무대 중앙으로 걸어가 섰다. 숨 막힐듯한 적막을 뚫고 내 심장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달달 외운 대사를 틀리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면, 지금은 눈앞에 있는 상대 배우와 눈을 맞추고 호흡을 맞추는 데에 더 집중한다. 이 무대를 이끌어가는 건 대본에 쓰여있는 대사가 아니라 나와 내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무대에 오르기 전,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나를 내려놓고, 온전히 그 배역이 되기 위해. 무대 위에 서있는 그 순간만큼은 현실의 문제들을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무대가 끝나고 들려오는 관객들의 박수소리는 이 무대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그동안 수고했다는 위로감을 안겨주었다. 매 순간이 소중했고, 감사했다. 오래도록 이 무대 위에 서있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 더 간절해졌다.
화가
아버지의 길을 따라 화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상 속에서 수집한 영감들을 수첩에 메모해두었다가 작업을 하곤 한다. 작년에는 월간 윤종신처럼 매달 하나의 테마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했다. 어떤 달에는 한 달 내내 작품 한 점에 매달리기도 하고, 어떤 달에는 열 점 이상의 다작을 하기도 한다. 100호가 넘는 대작을 만들거나, 테마를 심화시키고 싶어서 '이번 달은 건너뛸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한 달에 한 테마로 한 점 이상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기에 영감을 고이 묵혀두었다. 물론 게을러지는 날도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기 싫은 마음을 가지고 붓을 잡는 것보다, 충분히 휴식하고 난 후에 즐거운 마음, 의욕적인 태도로 붓을 잡는 것이 나에게도, 작품에도 이롭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아버지의 메인 테마였던 '한여름 밤의 꿈'을 테마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볼 생각이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이 높아진다. 늘 곁에 아버지가 계신 듯하다. 이 길을 걸을 수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여행 가
나는 10여 년간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조르바'처럼 본능이 이끄는 대로,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앞으로 나아가며 살고 있다. 여행기를 글로 써서 책도 내고, 머무는 도시에서 요가수업도 하고, 카페나 펍에서 일하기도 했다.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생존한 덕에 지금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7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는 죽어도 되지 않던 게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저절로 늘었다. 내일 만나는 친구랑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고, 오늘 이 말을 이렇게 하고 싶었는데! 아쉬워하며 공부하다 보니 일 년 걸려 배웠을 양을 한 달, 아니 일주일 만에 배웠다. 그렇게 나는 전 세계 곳곳에 여러 친구들을 사귀었고, 이제는 언제든 떠나고 싶어 질 때 찾아갈 친구들이 생겼다. 그들이 한국에 올 때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나의 집은 그들에게 열려있고,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한다.
심해연구자
어려서부터 나는 심해에 관심이 많았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는데, 그중 심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가장 구미를 당겼다.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를 내가 가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만으로도 설레었는데, 지금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 잠수함을 타고 직접 심해로 내려가기까지는 참 오래 걸렸다.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 시작한 공부가 이렇게 멀리까지 오게 될 줄이야.. 심해는 고요하다. 어둡고 고요한 심해에서 마주친 생명체들과 나는 교감을 한다. 제각기 자신의 환경에 맞춰 진화한 모양새가 기이하고 아름답다. 나는 왜 나의 상황, 나의 환경에 이들처럼 내 몸을 온전히 맡기지 못했을까? 불평, 불만 없이 주어진 환경에 맞춰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 가장 합리적이고 가능성 있는 선택인데 말이다. 오늘도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알아가고, 나를 더 알아간다. 바다는, 자연은 나에게 지혜를 가져다준다.
파티셰
처음 파티셰의 꿈을 꾼 건 '내 이름은 김삼순' 드라마를 본 초등학생 때였다. 막연히 드라마에 나온 파티셰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이고, 멋져 보여서 나도 파티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빵은 내가 좋아하는 명상과도 같았다. 오감에 집중하는 일이었다. 정성스러운 작업의 연속이었고,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꾀를 부릴 수 없었다. 들인 노고가 결과로 나온다는 점도 좋았다. 정직한 일이었다. 나는 참 빵을 좋아해서 많이 먹었는데, 슬프게도 내 몸은 힘들어했다. 태생적으로 소화기관이 좋지 않아서 소화를 잘 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소화가 잘 되는 빵을 만든다. 당뇨인들도, 채식주의자도, 위장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빵을 만든다. 내가 먹을 수 있고, 먹고 싶은 빵을 만드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나의 빵을 좋아해 주었다. 다수의 취향과 의견을 따를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취향, 내 선택을 따르며 살다 보면 비슷한 사람이 모이게 되니 말이다.
이로써 다섯 가지의 삶을 그려보았다. 나는 이 중 어떤 삶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그 어떤 삶도 지금의 삶과 가깝지 않다. 아티스트웨이 과제에 따라 나는 이번 주 중으로 위 다섯 가지 삶과 닮은 무언가를 해보려 한다. 연극을 볼 수도, 그림을 그릴 수도, 여행을 떠날 수도, 심해 다큐멘터리를 볼 수도, 빵을 구울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좋다. 어떤 선택이든 상상에 가까워지는 방향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