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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Jan 05. 2023

남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것

불량품이 아니라 리미티드에디션

나는 내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달리는 기차에서 봐도 한국인임을 확신할 수 있는 토속적인 외모와 달리,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도시여자다. 부모님이 7년 전 갑자기 동해로 터를 옮기기 전까지, 서울이 아닌 곳에서의 삶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서울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람 인생이란 게 한 치 앞도 모른다고, 어느새 나는 방 창문을 열면 산이 보이고, 자다가 눈을 뜨면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 있다. 회사에서 점심 먹고 의자에 기대 졸며 꿈꿨던, 그런 멋진 삶이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건 꽤나 불안한 일이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산골마을에서 살고 있고,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 나는 지금 동해 산골에서 펜션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을 돕고 있다. 직장 생활할 때에는 누군가 나의 직업을 물으면 업종을 말하거나, 직무만 말해도 "아~"하는 반응을 도출해냈던 데에 비해, 지금은 동일한 반응을 이끌어내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무슨 일 하세요?"

"아 저는요, 부모님이 동해에서 펜션을 하고 계셔 가지고요, 일 도와드리고 있어요. 원래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요,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셔서 내려오게 됐거든요... 구구절절..."


물론 아주 간단하게 말할 수도 있다.

"무슨 일 하세요?"

"펜션해요!"


이게 참 스트레스였다. 명확하게 내 일이 있다면, 당당하게 말할 텐데 왠지 모르게 위축된다. 전문성이 인정받는 내 일을 하고 있지 않아서일까? 스스로 보기에도 전보다 편한 삶을 살고 있어서일까? 나는 펜션일을 멋지지 않게 여기고 있는 걸까?


물론 펜션일도 해야 할 일이 꽤나 많다. 눈에 안 보이게 산더미 같은 일을 밀어 두고 할 일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오래된 건물을 매입해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시선이 닿는 곳마다 고치고 때워야 할 곳 투성이다. 뚝딱뚝딱 소음이 필요한 부분은 내 영역이 아니다. 전주인이 발라놓은 화려한 꽃무늬 벽지와 민트색 방문을 흰색 페인트로 칠하는 일 정도가 내 몫이다.


사실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다 제각기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같은 전공을 한 친구들 중에도 어떤 친구는 직장인으로, 어떤 친구는 프리랜서로, 어떤 친구는 석박사 학자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 친구들과 나의 차이라고 한다면, 친구들 곁에는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나에게는 없다는 거겠지. 전국의 펜션집 자녀들이나 부모님의 일을 돕는 2세들을 찾아 나서 커뮤니티라도 만들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막연한 불안감과 외로움이 조금은 덜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것도 주입식 교육 폐해다. 공장에서 제품 찍어내 듯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육과정을 받고, 똑같은 시험을 치르며 살다가 사회로 내던져졌으니, 다름을 불량으로 여기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받아들여야지. 내가 태어난 나라고, 내가 속한 사회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할 환경인데 불평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세상에 문제가 있는 걸 알아차렸지만,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내가 바뀌는 수밖에. 다름을 특별함으로 여겨보자.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사는 나는 불량품이 아니라 리미티드 에디션일지도 모른다. 모양이 특이해 경매에서 수십억에 낙찰된 특별한 불량품도 있지 않은가? 온몸이 새하얀 알비노 동물과 오드아이 동물은 아름답고 특별하게 여기면서 왜 남들과 다른 나는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걸까?


연예인을 동경해서 전신 성형을 한다고 해서 그 연예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누군가 흉내 내려고 아무리 애써도 내가 될 수 없다.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우여곡절들과 시행착오들을 떠올려보면, 내가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살아도 똑같이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건 분명 불안한 일이다. 하지만 특별한 내가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우리는 모두 특별함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숙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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