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참 단점이 많은 사람이다. 비관적인 사고방식,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 미루는 습관, 타인을 향한 방어적인 태도, 낮은 자존감과 높은 자존심, 손해 보기 싫어하는 이해타산적인 태도,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시야,경쟁의 상황에서 나타나는 패배주의적인 태도 등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없이 이어질 것 같다. 나를 힘들게 하는, 내가 가진 수많은 단점 중 어떤 녀석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참 고민하던 차에 노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내 속을 가득 채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 속은 늘 시끄럽고, 북적이고, 정신이 없다. 내 속엔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들과 제각기 다른 대답을 하는 이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많으니 해야 할 것도,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셀 수 없이 많다. 각자의 목소리들이 각각의 기준을 만들어 나를 옥죄고, 또 혼란스럽게 만든다. 한 번에 한목소리만 들리면 선택이 수월할 텐데,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목소리들에 나는 어쩔 줄 몰라 그만 얼어붙는다.
이 목소리들은 내가 나답게 사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인터넷상 익명의 네티즌 같은 존재들인데, 내가 직면한 상황에 따라 정체 모를 익명의, 가상의 존재들로만 구성될 때도 있고, 친구들이나 가족들, 동료들이 포함될 때도 있다.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네티즌과 주변인들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내가 내리는 결정들에 딴지를 건다. 혹여 내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행동을 하면, 가상의 인물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한쪽은 나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반대쪽은 내 입장을 대변한다.
안타깝게도 내 편은 늘 목소리가 작다. 그래서 나는 매번 그들을 의식해 가장 도덕적이고,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안전한 행동을 찾아낸다. 나를 위한 선택도, 특정한 상대를 위한 선택도 아닌, 있지도 않은 가상의 존재를 의식한 선택. 비난을 피하기 위한 비겁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가상 인물들의 소리가 너무 커, 내가 내는 소리는 묻혀버린다. 그렇게 나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엉뚱한 선택을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고, 엄격하고, 예민하며, 완벽주의자인 그들은, (내 동의도 없이 내 머릿속에 사는 주제에) 내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할 때마다 죄책감을 부여한다.
단점투성이인 내가 엄격한 감독관들을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에, 늘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몇 안 되는 나의 지지자들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피곤하면 좀 게으름피울 수도 있지', '원래 인간은 이기적이야' 같은 말로 나를 옹호하지만, 그들은 힘이 없다. 현생에서도, 내 머릿속에서도 늘 악당들이 이긴다.
글을 좋아해 글을 업으로 삼았지만, 나 홀로 보는 글과 타인에게 보여줘야 하는 글은 너무 달랐다. 글을 한 줄 쓸 때마다, 이 글을 읽을 상사와 동료, 광고주,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상사의 입맛에 맞춰 썼다가, 광고주의 목소리를 듣고 지우고, 또 동료의 목소리를 듣고 수정하고, 그렇게 썼다 지우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목소리를 피해 조용한 회의실로 들어가 고요한 적막 속에서도 써보고, 백색 소음에 목소리들이 묻히길 바라며 카페에 가서도 써보고, 시끄러운 지하철역 의자에 앉아서도 써보았다. 언젠가는 회사 비품 창고 구석에 쪼그려 앉아 글을 쓴 날도 있었는데, 하필 그 모습을 상사에게 들켜서 얼굴이 시뻘게졌었다.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소리로부터 벗어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운 좋게 상사 목소리에만 집중했더라도, 내 머릿속 그는 어차피 가상의 존재였기에, 내 글은 상사도, 나도,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인가 싶어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내 머릿속을 불법 점령한 그들은 너무나 뻔뻔하고 극악무도해서, 무시하려 하면 더 큰 목소리로, 더 자극적인 말을 뱉으며 나를 상처입힌다. 그들이 바로 내 안에 돋아난 가시들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내 단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공부한다. 인생에 몇 없을 공백기를 맞아, 나를 공부하는 중이다. 수많은 목소리로 인해 잃어버린 나를 찾고, 내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목소리 배역을 맡아 원망 받아 온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나는 열심히 공부한다.
언젠가 내 속에 나도, 나의 소중한 사람들도, 이름 모를 사람들까지도 쉬고 갈 큰 숲이 생기길 바란다. 가시나무가 아닌 보드라운 갈대나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아니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숲이면 좋겠다. 포근하고, 아늑한 쉴 곳이 되어 사람들을 품어주는 날이 찾아오길, 오늘 밤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