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직유 Sep 02. 2021

상대적 박탈감에 대하여

10년 만에 만난 친구가 벤츠를 끌고 왔다

  고등학생 때 함께 미술 입시를 준비한 친구가 있었다. 나는 내신 성적이 좋아 수시로 대학을 붙었고, 친구는 재수를 해서 일 년 뒤 대학에 입학했다. 친구는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그림에도 욕심이 많아서 늘 더 잘 그리고 싶어 했고, 남에게 미움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주체적이고 당당한 아이였다.


  반면 나는 그리 큰 열정도 욕심도 없이 그저 물 흐르듯 사는 아이였다. 그저 시키는 대로, 남들이 하는 대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주 내에서 활동하고 생각하고 꿈꾸는 그런 아이. 정물화를 그릴 때, 그 욕심 많은 친구가 정물을 자기 이젤 가까이로 가져가면 속으로는 부글부글했지만 얼마나 욕심나면 저럴까 하면서 그러려니 하고 말았던 그런 아이였다.


  얼마 전, 친구가 동해에 여행을 왔다고 잠깐 볼 수 있냐고 연락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만이었다. 설레기도 했고, 반갑기도 했다. 친구는 남자 친구와 함께 여행을 왔는데, 서울에서부터 차를 몰고 왔다고 했다. 카페에서 한 시간 동안 10년간 묵혀 둔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그날 밤, 친구 인스타에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벤츠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머리가 멍 했다. 온갖 생각이 들었다. 부럽다, 대단하다, 나는 왜? 그래 욕심 많고 열심히 하는 친구였지,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렇게 된 게 뭔데? 방황하는 거? 왜 나는 자리잡지 못하고 어중이떠중이처럼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어느 것 하나 전문성을 갖지 못했을까? 왜 항상 어느 것 하나에도 발을 푹 담그지 못하고 외발 인생을 사는 걸까?


  친구가 부러웠고, 부모님 일을 도우며, 버젓한 직장 없이 동해에 살고 있는 내 삶이 비교됐다. 한 번 어긋난 비합리적인 사고는 걷잡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건강악화로 동해에 온 건데, 왜인지 나는 스스로를 낙오자라고 여기고 있었다. 힘들다고 불평하고 투정 부리지 않고 마인드 컨트롤하며 직장생활을 계속했다면, 지금 내 모습은 달랐을까? 내 머릿속은 자동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가설들을 세우고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현재 느끼는 불만족과 불행감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했다. 연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더 견디기 어렵다고, 직장 상사 때문에, 회사가 별로라서 내 인생이 힘든 거라고. 핑곗거리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왜 나는 끊임없이 불평하고, 내 불안과 불행의 핑곗거리를 찾았을까? 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지 못하고, 도망칠 구석을 만들까? 스스로를 돌아보면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나는 늘 질하고, 비겁하고, 못난 모습이다.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자존감이 낮고, 비관적인 내가 또 싫다. 끝없는 원망의 굴레 속에 살아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간절함이 부족해서 그런가? 삶의 태도의 문제일까?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런 삶이 있으면 이런 삶도 있는 거라고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자꾸 이유나 원인 따위를 찾아 해결하려고 해서 몸과 마음이 쉴 틈 없이 바쁜 모양이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안경은 무슨색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