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죄송합니다 10편
아이러니
“타고난 것들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82년생 나와 동갑인 친구가 떠올랐다.
지금도 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아이다.
아빠가 무책임하게 가족을 버려서 자신은 돈을 벌어서 빚을 갚고,
소녀 가장처럼 아픈 엄마와 동생들을 돌보아야 해서
제때 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했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고 지금도 가슴속에 원망이 가득 차 있다.
이 아이와 이야기를 할 때,
“스무 살 이후의 삶은 타인을 탓하면 안 되고, 온전히 너의 몫이야”라고 말해주려다
거울에 비추듯 내 모습을 돌아본다.
내 삶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양어머니를 위해 사용했는지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피터 비에리의 말처럼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고
“내 내면세계에 내가 지휘권을” 가져야 함을 머리로는 끄덕이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다.
내 삶의 많은 시간을 양어머니를 원망하는 데 사용하고,
양어머니로부터 비난받고 학대받은 나를 다시 비난하며 소모하고,
양어머니에게서 벗어나는데 사용하고 있다.
어쩌면 나의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해 버린 사람이
내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라는 아이러니...
나와 동갑인 그 친구에게 말을 하려다 보니,
나는 그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을 닫아버린다.
내가 받은 아동학대를 입밖으로 꺼내 말하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어쩌면 나를 학대한 양어머니를 용서하고
그 분노의 감정을 다 빼기까지 앞으로 40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영화 <올드보이>의 유지태는 최민식에게 복수하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았다.
복수가 끝난 후 생의 목표가 사라졌다면서 자살하는데,
나는 그렇게 내 일생을 양어머니에게 쓰고 싶지 않다.
‘타고난 것들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구절에
다시 밑줄을 긋는다.
암,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