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죄송합니다 9편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슬퍼서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9편.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슬퍼서
사춘기 시절 내 유일한 관심사는 죽음이었다.
학창 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는 시인의 말은 죽음을 연상시켰다.
나는 지옥을 살았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슬퍼서,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매일 죽으라는 양어머니의 저주를 받으며 살아있는 이곳이 지옥이었다.
양어머니만 없으면, 그곳이 천국일 거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죽음은 칼로 손목을 긋는 것이었다.
문구점에 가서 두꺼운 커터 칼을 샀다.
손목을 그으려니 어느 정도 힘을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른손으로 칼을 잡고 왼쪽 손목을 그었는데 가느다란 핏줄기와 함께 갑자기 칼자국 근처가 부풀어 오르면서 간지럽기 시작했다. 새 칼에 묻은 공업용 기름에 피부가 염증을 일으킨 것이다. 그전까지는 없었던, 혹은 몰랐던 피부염증이 갑자기 생겼다.
가느다란 핏줄기와 함께 칼자국 근처가 부풀어 오르면서 간지러운 순간 ‘죽으려는 정신’과 ‘살려는 육체’의 상반된 모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 정신은 죽으려고 하는데, 내 정신이 죽으려면 육체를 죽여야 하고, 그런데 육체는 죽지 않으려고 피를 내보내고, 혈소판이 활동하면서 지혈을 하고,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아나는 과정이 참 이율배반적이다.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정신인가 육체인가?
생각하다 보니
내 몸 안에서도 정신과 육체가 이렇게 따로 노는구나....
내 몸뚱이 하나 내 마음대로 못하는구나...
어이가 없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