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죄송합니다. 2편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2편.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27살까지.. 나는 태어나서 죄송한 존재였다.
나는 내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서웠다. 어느 인자한 어른이 나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더니 글로 써보라고 했지만. “네, 언젠가는…”이라며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웠던 거다. 내가 살아온 삶을 내 머릿속으로, 가슴으로 또 경험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기 역사를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즉 자신의 존재 확인을 위해서이다”라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이 나를 원고지 앞에 앉혔다.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고 경험을 되뇌는 것이 40년 묵은, 낫지 않고 덧난 ‘상처’였다면, 그때의 내 느낌과 기억을 글로 정리해서 객관화하는 것은 ‘치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고 한동안은 양부모님이 너무 미워져서 걸려온 전화도 받지 않고 소소한 일에도 화가 났다.
내 삶을 글로 쓴다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일렁거리곤 했다. 자기 역사를 쓸 때 처음 시작은 보통 출생지와 가족사항, 출생 시 있었던 특별한 사건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나는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태어났는지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나는 고아원에 살다가 입양되었다는 사실뿐 이다.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찾아보니 나에 대한 정보는 이렇게 인쇄되어 나온다.
생년월일 1982년 2월
출생지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
출생신고일 1987년 12월
82년 2월 태어난 아이는 6년간 세상에 없었다가, 87년 12월 출생 신고되었다.
최초의 공식 서류에 적힌 네 가지 정보는 무엇을 알려주는 것일까?
서류상 이름은 안나이다. 그런데 내 진짜 이름 안나가 아니다. 고아원에서 내 이름은 주영이고 진짜 내 이름은 모른다.
내 친 아버지, 친 어머니는 나를 머라고 명명했을까? 궁금하다.
서류상 생일은 1982년 2월이다.
나는 정말 이 날에 태어났을까? 이 생일이 맞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내가 진짜 태어난 날은 죽을 때까지 모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작년에 양아버지가 “너 진짜 생일이 3월 14일”이라고 알려줬다.
3월 14일.
사탕을 주고받으며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화이트 데이에 ‘태어나서 죄송한’ 내가 태어났다니,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그런데 1982년생이라는 것도, 3월 14일도 진짜가 맞을까?
서류상 출생지는 은평구 불광동이다.
나의 출생지가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으로 되어 있는데,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다.
내가 최초 발견된 곳(?)의 주소지 혹은 내가 살았던 고아원의 주소지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서류상 출생신고일은 1987년 12월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처럼, 나는 태어난 지 6년이 지나서야 출생 신고되었다.
양부모님 집으로 처음 간 것은 1986년 반팔을 입은 어느 더운 여름이었는데 출생신고가 1987년 12월에야 된 걸 보니, 내가 입양된 후에도 입적을 할지 말지 일 년 반 넘게 고민했었나 보다. 따라서 출생신고일도 진짜는 아니다. 나는 6살까지 무적자로 살았다.
이름도, 생일도, 출생지도, 출생신고일도 모두 가짜인 나.
나는 여기 이렇게 숨 쉬고 살아있는데,
현실에 존재하는 나는 과연 누구일까.
나에 대해 생각할수록,
나의 심연으로 빠질수록 ...
태어나서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