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죄송합니다 4편
주영아 미안해
나는 양어머니로부터 혹독한 아동학대를 받았다.
아동학대는 성인이 된 다음에도 지속적인 폭력으로 이어졌다.
입양된 5살 여름부터, 양어머니 집을 탈출한 27살까지 매일 울었다.
사진으로 남은 기억이 있다. 6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울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양어머니에게 맞아서 울고 있었는데,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니 유치원에서 온 어색한 흰 수염을 달은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었다.
그날은 가짜 산타가 진짜 산타처럼 보였다. 양어머니의 매로부터 나를 지켜주었으니까... 할렐루야! 사진을 보니 나의 얼굴은 마른 눈물 자국 위로 웃을까 말까 어색한 입 꼬리가 남아 있다.
정서적 폭력, 언어적 폭력, 신체적 폭력에 노출되고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그 상처를 숨기고 살았다.
나처럼 사랑받지 못하고 학대받으며 자란 사람 중 나와 가장 나와 비슷한 심정을 글로 남긴 사람은 가네코 후미코이다. 박열 열사의 동거인이자 폭탄테러를 준비하다 감옥에서 자신의 생애를 적은 긴 글을 남기고 자살한 그녀처럼 “저주받은 나의 생활의 최후의 기록이며 이 세상을 하직하기 위해 남겨두는 기록”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가네코 후미코, 발터 베냐민, 프루스트 모두 유년에 대한 글쓰기를 유서 쓰기로 여겼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죽는다면 아예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자살을 시도했던 중학교 때 그랬듯이….
단지, 가네코 후미코의 글을 읽으며 나와 같은 사람이 세상에 한 명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무적자로 살았던 가네코 후미코처럼, 나도 무적자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양녀로 간 집에서 식모로 살았던 가네코 후미코처럼, 나도 양녀로 간 집에서 식모였다. 요리와 설거지를 하지 않고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청소를 하지 않고 잠을 자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생 때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도시락을 싸줬는데 반찬이 맛이 없다고 투정할 때, 나는 양부모님이 먹을 밥상을 차리고 도시락을 스스로 싸서 학교를 가야 했다.
나는 매일 양어머니의 화풀이 대상으로 내 밥값을 대신했다. 하루라도 울지 않았던 날은 없었다. 양어머니가 화가 나면 그 화가 모두 나에게 돌아왔다.
무슨 트집이든 잡아서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댔다. 팔꿈치 뒤쪽이나 허벅지 안쪽, 가슴, 배 등 멍이 들어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부위의 살을 골라 집요하게 꼬집었다. 중학교를 가자 이제 막 자라는 가슴 주변을 꼬집었다.
온몸에는 꼬집힌 핏물 자국과 멍이 끊임없이 생겼다가 없어졌다. 노랗고 뻘건 퍼런 멍 신호등이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가 죽어라. 차에 박혀 꼭 죽어라. 옥상에서 뛰어내려라. 남들은 잘도 죽던데 너는 왜 못 죽느냐”라는 말은 다반사였다.
생리통이 심해서 아침밥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 있던 날은 “꼴 보기 싫다”며 누운 채로 머리채가 잡혀 마루까지 끌려갔다.
양어머니가 나를 왜 때렸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사과는 내 몫이었다. 피해자가 잘못했다고 가해자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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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아 미안해 글을 보면서
주영아 미안해라고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