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죄송합니다 6편
사랑받는 딸을 연기하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6편
사랑받는 딸을 연기하다
내가 입양되었고, 양어머니와 양아버지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생물학적으로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생물 시간이다. 양어머니는 O형, 양아버지는 A형, 나는 B형. 절대 나올 수 없는 조합의 가족이었다. 혈액형 유전, 우열의 법칙 등 여러 가지 유전 법칙을 다 비껴나갔지만, 그럼에도 나는 믿고 싶었다.
“나팔관이 막혀서 힘들게 너를 낳았는데, 어느 날 놀이터에서 놀다가 너를 잃어버렸단다. 너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양어머니의 거짓말을.
내 삶은 양어머니에게 선택한 날부터 구겨진 종이처럼 찌그러져서 살았다.
“나는 혼자다. 사랑받지도 못하고 사랑할 사람도 없다. 살아남았다”라는 수전 손택의 말처럼 나는 혼자였다. 사랑받지도 못하고 사랑할 사람도 없었지만, 양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싶었다. 내게 매일 집안일을 시키고, 때리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지만, 그래도 이 집의 친딸이길 바랐다.
지금도 종종 생각해본다. 나를 왜 입양했을까?
나는 “어머니가 쓰러지지 않게 떠받치고 수혈을 해주고, 어머니 목숨을 부지해줄 사람“으로 뽑혔는지도 모른다. 양어머니의 수발을 들고, 보살펴줘야 하는 돌봄 노동자, 가사 노동자로 입양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어렸을 때는 그런 내가 대단한 존재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친척들이 오는 명절에 양어머니와 함께 30인분씩 음식을 만들어내면, 친척들은 측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친척들이 양어머니에게 “애를 놀리지도 않고 이렇게 힘든 일을 시키면 어떡해요. 좀 쉬게 해요”라고 말하면 그녀는 움찔했다. 그런 분위기가 어색해서 오히려 내가 “저, 괜찮아요. 요리하는 거 좋아요”라고 대답했을 때는 “그렇게 어른스러운 사명을 내려 주어서 으쓱한 기분”이 들기마저 했다.
입양이라는 수갑에 묶인 채 도망칠 수 없는 나는 착한 딸, 사랑받는 딸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이중생활을 했다. 집안에서는 친딸인 척, 친딸이라는 말을 믿는 척, 고아원에서의 기억이 없는 척, 양어머니를 사랑하는 척, 모범생인 척 연기했다. 집 안에서의 나는 학대 피해자의 무기력한 모습 그 자체였다.
학습된 무기력 속에 머물러 있었다. 아기 코끼리 다리에 사슬을 채워 놓으면, 어른 코끼리가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사슬에 묶여 살아가듯이, 벼룩이 담긴 통의 뚜껑을 덮어놓으면 뚜껑을 열어도 딱 그 높이만큼밖에 못 뛰듯이, 나도 그러했다.
집에서의 나와 밖에서는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집 밖에서는 과대표를 하고, 총학생회를 했다.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빠르게 승진했다. 그러면서 집에서는 양어머니에게 계속 맞았고, 욕을 먹었고, 폭력에 시달렸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다.
나는 사랑받는 딸을
완벽히 연기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