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죄송합니다 7편
피해자이면서 치료자인 삶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7편.
피해자이면서 치료자인 삶
나는 아동학대를 받았다.
22년간
내가 받는 학대와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믿고 말한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니 나는 다른 사람을 믿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믿지 않았으니까..
물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말을 하고 나서 받을 낙인과 불쌍하게 나를 보는 시선은 나에게 가해질 2차 폭력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가해자인 양어머니가 나의 폭로를 알고 나면 나는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로 하여금 수십 년간 입을 닫게 만들었다.
나는 사람이 제일 어렵고 무섭다.
지금도 그렇다.
이중생활처럼 내 마음도 다중이었다.
자기 연민과 자기 비하를 하루에도 몇 차례 왕복했다.
그럼에도 학교는 계속 다녔고, 대학엘 갔고, 리더가 되었고, 졸업을 했고, 직장인이 되었다. 회사에서 정규직 직원이 되고, 승진해서 팀장이 되었다.
수전 손택의 말처럼 “어머니의 분노를 두려워하는 나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손찌검을 하려고 어머니가 팔을 치켜들면 걷잡을 수 없이 움츠러들고 울음이 나오는 내가 한심”했다.
밖에서는 사회복지사랍시고 명함을 들고 다니며 어렵고 힘든 사람, 나와 같은 학대 피해자를 돕는 사회복지사가 내 직업인데, 내 삶 하나 감당하지 못하고 피해자로서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치료자라니.
너무 비참하고 나 자신이 한심했다.
워커홀릭으로 일에 집중했던 것은 그것 말고는 내 가치를 인정받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 합법적으로 집을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후회되는 것은, 20살이 지나서 왜 바로 양어머니에서 탈출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고시원이라도, 기숙사라도, 월세라도 얻어서 진작 나왔어야 했는데 말이다.
니체가 말하길, “인간은 외로울 때 자기 자신을 둘로 나눈다”라고 했다는데,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로서의 삶과 주도적으로 내 삶을 이끌어 가는 삶, 이 두 가지를 분리하며 사는 건 너무 괴롭고 힘에 부쳤다.
속으로는 이를 악물어 피멍이 들면서도 곁으로는 삶을 무심히 잘 살아내야 했다.
피해자와 치료자라는 두 가지 이율배반적인 삶
그렇게 내 삶을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