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 시골에 전입신고
택배가 도착했다.
남편 : 택배가 왔네 가벼운데 왜 이리 커?
아내 : 드디어 왔네! 이거 모종이야 하우스에 심을 거.
남편 : 그래? 뭐 샀어? 구경이나 할까?
아내 : 얼마 안 샀어. 난 부족할 까봐 걱정이네. 시장에 한번 다녀와야 할까 봐.
택배 상자가 열리고 탁자에 하나 둘 모종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흐뭇한 내 마음과 다르게 남편은 점점 인상을 쓰고,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이유를 모르겠어서 난 묻는다.
아내 : 왜 한숨이야? 모종 상태가 별로야? 왜 그래?
남편 : 이거 봐봐!! 너 이거 진짜 다 심을 거야?
아내 :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러려고 산 거지 구경하려고 샀겠어? 흥!!
당연한 소리를 어이없게 내뱉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모종들이 다 크기 전까지 말이다.
사람의 기억력은 참 단순하기도 하나보다. 그렇게 풀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맛보았는데도 불구하고 난 이 풀(야채)을 많이도 샀던 것이다.
주도권을 빼앗기기 싫었던 나는 다시 한번 남편에게 경고하였다.
아내 : 다 심을 거니까 이상한 말 하지 마!! 다 먹는 거야. 그리고 내가 키우고 싶었던 것 들이고.
남편 : 그래 다 심어 너 다 먹어라. 못 먹으면 알지? 휴~~~
여전히 초보농부인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신이 나서 하우스 밭을 갈고, 고랑을 만들고, 비닐을 덮고 모종을 심을 준비를 열심히 하였다. 구역을 나눠서 알뜰하게 구매한 모종들을 심었다.
얼마나 뿌듯하던지 곧 모종들이 자라면 맛있게 샌드위치도 해 먹고, 고기도 구워 먹고, 입맛 없으면 고추장에 밥만 싸 먹어도 너무 좋지 하면서 말이다.
첫 수확 날 싱싱하게 자라 일용할 양식을 주는 내 소중한 야채들은 나에게 직접 키웠다는 자신감을, 깨끗하게 키웠다는 자랑스러움을, 아삭하고 맛이 좋다는 뿌듯함을 선물해 주었다.
첫 수확날이니 당연히 마트로 간다. 그리고 제일 맛있어 보이는 고기와 시원한 맥주를 한 껏 담았고 아직 해가 넘어가려면 한참 남았지만 불부터 피우라고 난리를 피웠다.
고기가 맛있게 익어가고, 수확한 야채들이 깨끗이 씻겨 바구니에서 내가 먹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광경인가. 남편과 맛있게 먹는다. 행복하다.
첫 수확의 기쁨은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가고 이제부터는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남편 : 어쩔 거야?
아내 : 무얼?
남편 : 저 많은 걸 어떻게 할 거야? 다 먹을 수나 있어?
아내 : 에이 무슨 얼마나 있다고 먹으면 되지.
하우스 문을 열기 전까지 위풍당당했던 나 자신에게 결국 난 후회를 선물하고 말았다. 정말 얼마 안 심었는데 상추와 각종 쌈채소들은 무럭무럭 자라 있었고, 평소 좋아하지만 즐기지 못했던 허브들도 이제 나도 좀 봐줘하며 그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뒤편엔 토마토, 오이, 가지, 고추 등등 하우스 한가득 수확할 것들로 차있었고, 난 차마 그 모습을 보고는 문을 닫고 말았다.
내가 문을 닫고 돌아서는 모습을 본 남편이 기어이 뒤통수에다 한 마디 던진다.
남편 : 내 이럴 줄 알았다. 이그~~ 어쩔 거니~~~!!
아내 : ………….
남편 : 어떻게 할 거야? 그냥 둬? 응?
아내 : ………….
남편 : 대답 안 할 거야?
아내 :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잠시 나 좀 모른척해줘
남들이 보면 이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을지 모르겠다. 주변에 나눠먹으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사는 이곳은 시골이고 주 업이 농사다. 나만 하우스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쁘게 잘 키워도 주변엔 더 잘 키워 먹기에 어디 나눈다는 소리도 쉽게 할 수가 없다. 실로 오히려 주지도 못하고 받아오기가 십상이다. 여기가 이런 곳이다.
다음날 아침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큰 바구니를 들고 하우스로 간다. 남편은 토마토 하우스에서 물을 주고, 순을 따며 시간을 보내고 있고, 난 어제 모른 척했던 수확물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열심히 수확하고 한가득 정말 한가득 담아 하우스를 나왔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서너 번 들리더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딸 : 엄마~~~~~
엄마 : 어이 딸~~ 무슨 일인가?
딸 : 엄마 상추 필요하지?
엄마 : 응? 상추? 아니. 필요 없는데.
딸 : 아니야 마트에서 사는 거 말고 시골에서 농사지은 맛있는 상추 필요하잖아. 교회 집사님들하고 나눠먹을 상추 말이야. 필요하지?
엄마 : 응 딸~ 상추 필요하지 얼마나 줄 거야?
딸 : 많이 아주 많이. 이것저것 넣어서 보낼게 이웃분들하고 교회 집사님들하고 나눠서 먹어요. 딸이 농사지어서 보내준 거라고 무농약이니까 안심하고 맛있게 드시라고 얘기하고.
엄마 : 아휴 그럼 누가 보내준 건데. 당연히 자랑해야지. 많이 보내줘 딸~
남편이 일 하는 사이 혼자 계획적으로 거사를 진행한다.
씻어 보내면 야채는 금방 상하기 때문에 살살 정리한다. 바구니에 담겨있는 그 많은 쌈채소들을 종류별로 모아서 봉투에 박스에 차곡차곡 담는다. 오이, 고추, 가지 등등 사이사이 선물처럼 넣어 포장한다. 그리고 우체국으로 달려간다.
택배를 보내고 돌아오니 남편이 말한다.
남편 : 하우스 정리했더라. 그 많은걸 다 어떻게 할 건데?
아내 : 이미 해결했어. 그러니 더는 묻지 마.
남편: 그 많은 걸 어떻게?
아내 : 묻지 마라 했는데…….
그렇게 사건은 조용히 넘어가는 듯했으나 이틀 뒤 친정엄마는 딸이 아닌 사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모님 : 사위~!! 덕분에 내가 좋은 야채를 나눠먹고 아주 기분이 좋았어. 고맙네.
사위 : 에?
장모님 : 보내준 야채가 싱싱하니 정말 맛나더라. 시골에 가더니 농사꾼 다되었네 울 사위는.
사위 : 하하하 제가 좀 하죠 농사를. 잘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다음에 또 보내드릴게요.
장모님 : 그래 고맙네. 사위. 들어가시게.
오늘도 점심엔 상추쌈과, 고추장이 밥상 위에 올라왔고, 한 쌈을 싸던 남편은 내게 말했다.
남편 : 그 많은 상추가 장모님 댁으로 갔다네. 당신은 알고 있었어?
아내 : 뭐? 어떻게 알았어? 당신 엄마랑 통화했어?
남편 : 응 전화가 왔는데 대뜸 상추가 맛있다고 고맙다고 하시네.
아내 : 그럼 누가 키웠는데 당연히 맛있지. 나 잘했지!!
남편 : 그 많은 걸 어떻게 했나 말도 없어 그냥 남이나 줬겠지 했는데, 장모님 댁에 보냈다니 잘했네.
아내 : 그렇지? 나 잘했지? 다음엔 시댁으로 보낼 거야 ㅎㅎㅎ
남편 : 울 엄마는 상추 싫어한다. ㅎㅎㅎ
속으로 나는 친정엄마를 아주 조금 원망했다.
다음번 전화에 왜 사위한테 전화했냐고 물어보니 사위한테 고맙다고 해야 다음에도 잘 키워서 주고 싶지 않겠냐며, 우리 딸도 고맙지만 사위한테도 고마우니 그 말을 전하려고 하셨단다.
역시 울 엄마다. 사위를 잘 다루신다.
이렇게 매년 난 키우고 넘쳐 친정으로 보낸다. 시댁에도 보낸다. 동서네도 보낸다. 친정동생네로도 보낸다. 온 집안 식구들에게 보낸다. 그리고 또 심을 생각을 한다.
이렇게 시트콤처럼 산골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