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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영어교육

인공지능 번역의 시대, 영어 공부해야 할까요?

by 장수연

그렇다. 나는 조만간 직업을 잃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더 이상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번역기를 돌리면, 이상한 문장이 많이 나왔다. 꽃보다 청춘에서 조정석이 "핫도그 세 개 주세요."라고 말하자, 구글 번역기가 "Please, Hot dog World~"라고 말하는 걸 보고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학생들의 과제에서도 번역기 돌린 글은 바로 티가 나서 "귀신 잡는 영어 쌤" 소리도 들었었는데...

사진 tvN 꽃보다 청춘-아이슬란드 캡처


인공지능의 딥러닝이 외국어 번역에 적용되고 빅데이터가 쌓이면서, 자동 번역 시스템의 성장은 눈부시다. 특히, 최근에 "Flitto"라는 집단지성 기반 번역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특정 언어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들이 AI가 번역한 것을 수정해서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도록 하는 크라우드 소싱 서비스다. 나도 (포인트 모아서 치킨 사 먹으려고) 한 번 가입해보았는데, AI가 번역해주는 문장이 거의 대부분 의미가 통했다. 기계와 사람의 컬래버레이션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데이터가 쌓이고 또 쌓이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진 뻔하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듯이, AI가 통·번역가들을 대체하는 시대가 오겠지? 그렇다면 과연 이런 시대에 우리는 영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또, 우리 아이에게 영어를 공부시킬 필요가 있을까?


SNS 기반 번역 플랫폼


우리가 2022년 현재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대부분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 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서. 그런데 AI가 번역을 담당하는 시대가 오면, 더 이상 먹고살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AI가 번역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갖추어야 할 것이다. 또, 번역기를 통하지 않고 직접 영어를 쓸 수 있으면, 영어로 된 정보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영어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지는 않을 거란 얘기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실용적인 측면 말고, 외국어 학습의 다른 측면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자동 번역의 시대에도 여전히 외국어(영어는 마스터했으니 다른 언어)를 배울 것이고, 내 아이에게도 (거부감을 크게 가지지 않는 한) 가르칠 생각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언어 속에 담긴 문화'를 배울 수 있다. 나는 홍콩 대학교에서 1년간 교환학생을 한 경험이 있다. 부모님의 감시에서 벗어나, 클럽에서 영어 회화 연습(?)을 한창 자유롭게 하던 시기였다. 클럽에서 만난 외국인들과 밥(술) 먹듯 주고받는 대화 중에 하나가 "넌 왜 홍콩에 오게 되었니?"이다. 이걸 영어로 그대로 번역하면, "Why did you come to Hong Kong?"이 된다. 그런데 내가 클럽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이렇게 묻지 않았다. "What brought you to Hong Kong?"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Why ~?"로 시작하는 문장은 '하면 안 되는데 왜 하냐'는 뉘앙스가 살짝 들어있다고 한다. "Why did you come to Hong Kong?"이라고 하면, "너 홍콩 오면 안 되는데 왜 왔어?" 이런 느낌?!! (물론 우리는 영어 원어민이 아니니까, 이렇게 질문해도 다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No Problem~)


그러고 보면, 영어에는 사물을 주어로 하는 문장이 참 많이 쓰인다. What makes you smile?(너 왜 웃어?), An apple a day keeps the doctor away(매일 사과를 먹으면 의사를 멀리할 수 있다)와 같은 문장을 우리말로 직역하면(무엇이 널 웃게 했니? 하루 사과 한 개는 의사를 멀리 한다) 굉장히 웃긴 문장이 된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한국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에서는 '누구'를 기준으로 주관적 사고가 강한 반면, 영미권 문화에서는 '무엇'을 중심으로 하는 객관적 사고가 강하다.


둘째, 우리말이나 우리 문화를 외부자의 관점에서 '새롭게' 볼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영어로 매끄럽게 번역이 안 되는 우리말 표현을 발견할 때가 있다.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좀 그래"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가? 이것을 영어로 하려면, "좀 그런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만 한다. "솔직히 말하기 좀 그래"라는 의미는 "솔직히 말하기가 좀 싫다(It's hard to be honest.)"로, "오늘 기분이 좀 그래"는 "오늘 기분이 좀 안 좋다(I don't feel good today.)"로... 그런데 저렇게 명확하게 말하기가 꺼려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우리말의 "좀 그래"라는 표현이 주는 애매모호함이 얼마나 편하게 느껴지던지... (비슷한 표현으로, '일이 좀 있어서'가 있다.) 또, "고소한 맛"을 어떻게 영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절대 없다. 사전에 나오는 "savory"나 "aromatic"은 향이 좋다는 것이지 우리 한국인들이 쓰는 "참기름이나 참깨 같이 고소한 맛"은 표현이 안 된다. 그렇다면 자동적으로 '고소한 맛은 한국 음식에 특히 잘 발달되어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우리는 전혀 다른 타인을 통해서만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다면 내가 가진 특징이 곧 보편적인 것이기에, 절대로 나의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아, 나는 이런 점이 남들과는 좀 다르구나"라고 인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다른 문화(언어)를 접해봄으로써 우리 문화(언어)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말하자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이다.


셋째,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가 주는 이점을 통해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인데, 외국어 사용을 통해서 우리의 사고가 확장된다. '생각하는 힘', '창의성', '융합형 인재' 같은 말이 교육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가만히 있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지적 자극이 필요하다. 관련 없는 것을 연결 지어보고, 익숙한 것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는 것처럼 말이다. 외국어 학습은 이와 같은 지적 능력을 기르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실제로 나는 영어를 말할 때, 약간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마치 내 안의 제2의 자아가 나오는 것 같다. (나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솔직하고, 조금 더 거침없고, 조금 더 섹시(?)하다.... ㅎㅎ 영어가 가지는 직설적이고 명확한 특징이 내 행동에도 스며드는 느낌이다. 제2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꺼내볼 수 있는 것이다.


Last but not least(마지막이지만 여전히 중요한), 이 모든 과정을 포함한 외국어 학습은 정말 재밌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낯선 문자를 해독하고, 생전 써본 적 없는 소리를 만들어보고, 소음 같기만 했던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와 의미를 가질 때, 그때의 희열은 실로 폭발적인 것이다.


요컨대, 영어(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이제 점점 더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심미적 혹은 교양적인 목적이 커질 것이다. 이미 사어(死語)가 된 라틴어도 여전히 배우듯이. 언어는 인류의 산물이고 우리가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니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캡처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언제나 재미있게! 배움은 늘 재미있어야 한다. 만약에 외국어 학습이 정말 죽기보다 싫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취향이니 존중해야 한다. 꼭 외국어가 아니어도 우리말로 된 깊이 있는 책을 읽고도 사고가 유연해지고 성찰력을 기를 수 있다. 다른 언어로 쓰인 문학 작품 말고, 음악이나 그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재밌는 것은 많다. 영어(외국어) 학습도 그중 하나다.



오늘 좀 "일이 있어서"... 글이 "좀 그렇네요"... (한국어 짱짱~!!)

저의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니,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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