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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육아의 필요조건

= 행복한 학교의 필요조건

by 장수연

육아를 하면서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기계적인 수학 연산을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쪽에서는 기계적인 연산이 수학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반대쪽에서는 연산을 빨리 하지 못하면, 나중에 학교 수업을 따라가거나 시험을 칠 때 불리해진다고 한다. 나의 육아 철학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므로 기계적인 수학 학습을 시키지 않는 것이 맞다. 하지만 수학 익힘책에 그어진 빨간 빗줄기(?)를 볼 때면, 아이의 자존감 보호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연산 훈련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일, 너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을 해"라고 얘기하면서도, 직업별 초봉 순위나 직업에 따른 삶의 질 차이를 떠올리면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해진다. 모두가 공부를 잘할 필요도 없고 잘할 수도 없는데,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그나마 제일 쉬운(혹은 공정한) 길이 '시험을 위한 공부'인 것이다.


같은 이유로 수업 또한 시험의 압박을 벗어날 수 없다. '삶을 위한 수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현실의 벽을 떠올리지 못했을 만큼.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연호)>>를 읽으면서, '자존감과 주인 의식을 심어주는 것, 더불어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고 수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친구들과 같이 발표 준비를 하며 협동 학습의 재미를 알게 하고,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과제를 내주고 개인별 피드백을 해주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 내신 9등급제에서 어떻게 옆에 있는 친구가 경쟁자가 아닐 수가 있을까? 제한 시간 안에 빨리 선다형 문제를 풀어야 고득점을 받는 수능 체제에서 어떻게 토론과 글쓰기 수업을 메인으로 할 수 있을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연호)


덴마크에서 '성적 우수상이 없는 학교', '다른 친구와 경쟁해서 이기는 것을 칭찬하지 않고, 과거의 자신보다 발전한 모습을 칭찬하는 학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덴마크 사회가 그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덴마크에는 '사람은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나 소중하다(49쪽)'는 의식이 자리 잡혀 있다. '약사도 중요한 직업이지만 목수나 택시기사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49쪽)'고 사람들이 공연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 덴마크 사회가 적어도 밥벌이를 해줄 정도의 직장은 찾아주리라 믿으니까요. 진짜 걱정은 그 직장이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냐 하는 거예요(204쪽).


우리도 이렇게 되길 바란다면, 내가 너무나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육아를 하면서 그리고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점점 더 사회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보장하고, 어떤 직업과 모습이든 서로를 존중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적인 성숙을 이룬다면,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자신의 색깔을 진하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 아이가 사는 세상이 좋아지는 것이다. (아무리 내 아이가 바람직하게 잘 자랐다고 해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하면 과연 이 아이가 행복할까?) 그러므로 내 아이가 잘 크는 것만큼 다른 집 아이들이 잘 크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자유롭고 안정적이며 평등한 사회 만드는 것이 행복한 육아(교육)의 필요조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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