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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Oct 04. 2022

첨삭받을 용기

삶을 가꾸는 글쓰기 특강 #2

  원어민 강사가 진행하는 영어 글쓰기 수업 연수를 들은 적이 있다. "Wrting is [                ]."에서 빈칸에 들어갈 단어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는 Reflection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Life라는 단어를 말했다. 강사가 준비한 PPT 화면의 빈칸에는 "Revision"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글쓰기는 결국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도서관 글쓰기 특강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글은 다듬을 수록 좋아지는 것이라고. 신춘문예 수상작들은 거의 1년 내내 갈고닦은 글이라고 하셨다. 혼자서만 자기 글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스터디를 통해 서로의 글을 손봐줘서 나중엔 '이 글이 내 글인가 우리의 글인가' 싶을 정도로 촘촘한 퇴고의 과정을 거친다고 하셨다.


  글쓰기 특강 두 번째 수업은 '퇴고'의 시간이었다. 수강생들이 각자 써온 시를 읽고, 함께 고쳐나가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바람 빠진 단팥빵을 보고 아버지의 약해진 팔 근육을 떠올려 쓴 시, 기억을 그림자와 전설에 비유해서 쓴 시, 누군가의 독설로 인해 입은 마음의 상처를 주제로 쓴 시가 차례로 도마 위에 올라왔다. 선생님은 마치 미슐랭 스타 셰프처럼 우리의 시를 리했다. 각자가 준비한 재료에 적절한 레시피를 적용해 시의 맛을 살렸다.


  내가 준비해 간 재료는 다음과 같다.


읽고 또 읽고

연한 밀크커피색 종이
여기저기 그어진 밑줄
군데군데 접힌 귀퉁이
새 책 보다 더 소중한 내 책

다시 읽을 때마다
밑줄이 또 그어지고
책 귀퉁이가 접힌다.

분명 다 안다 생각했는데
다시 읽으니 또 새롭다.
우리 엄마처럼

기미 가득 그을린 양 볼
얼굴 곳곳 드러난 나이테
쑥 들어가 겹겹이 쌓인 쌍꺼풀
엄마라 불리는 무수히 많은 존재 중
내가 엄마라 부를 수 있는 단 한 사람

읽고 또 읽고
새롭게 읽고
다시 읽고 싶은 사람
평생 읽고 싶은 사람


  선생님은 '책'이라는 은유를 써서 '엄마'를 표현한, 나의 시적 발상에 대해 칭찬해주셨다. 지혜는 책으로부터도 나오지만, 엄마로부터도 나온다고. 사실 나는 책과 엄마의 공통점을 지혜에서 찾은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엄마 얼굴을 봤는데, 내가 다 안다고 생각했던 그 얼굴이 낯설게 다가왔다. 마치 매번 볼 때마다 새롭게 눈에 띄는 문장 있는 나의 인생 책처럼. 변함없이 내 책장에 꽂혀있는 책처럼 엄마도 늘 그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이 시를 썼다. 그런데 선생님은 여기서 '지혜의 원천'을 읽어내신 거였다. 역시 글은 읽는 사람에 의해서 제각기 다르게 완성되는 것인가.


  선생님은 시의 함축성을 강조하시며, "시어를 아껴 간결하게 표현하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책 제목을 넣어 구체성을 더하고, 마지막 시구를 '평생을 읽어도 못다 읽을 사람'으로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주셨다. (맞아요. 그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퇴고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시는 다음과 같다.


인생 책

빛바랜 종이
여기저기 그어진 밑줄
군데군데 접힌 귀퉁이
내 인생 책, 채근담

다시 읽을 때마다
또 밑줄이 그어지고
귀퉁이도 접힌다.

내용을 분명 다 안다 생각했는데
다시 펼칠 때마다 새롭다.
우리 엄마처럼

기미 가득 그을린 양 볼
얼굴 곳곳에 새겨진 나이테
내가 엄마라 부를 수 있는 단 한 사람

읽고 또 읽고
다시 읽고 싶은 사람
평생을 읽어도 못다 읽을 사람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읽힌다는 것은 참 묘한 경험이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면서도, 내 모자람이 다 간파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니 고쳐지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동인가.


  인생에 있어서도 이런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무조건적인 공감과 수용이 당연히 좋지만, 분명 따뜻한 조언도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나를 치유하지만, 결국 나의 발전적 변화를 유도하는 것은 (듣기에 조금은 아프기도 한) 조언이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 수업(세상)에 배우러 왔고 성장하고 싶기에 기꺼이 첨삭(조언) 받을 용기가 있다.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이라는 말처럼, 글쓰기에서의 자유도 결국 첨삭받을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킷과 댓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란 인간... ㅎㅎ)


초딩 딸이 그려준 그림 아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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