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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Oct 26. 2022

커피 향보다 근사한 말 한마디

《콜센터의 말(이예은)》을 읽고

  나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 특강' 독후감 쓰기 과제로, 9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인 《콜센터의 말(이예은)》을 선택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작성한 독후감과 글쓰기 선생님께서 내게 해주신 피드백, 그리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본다.  




   콜센터가 없는 세상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에는 A/S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콜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많다. 그런데 과연 그들 중 몇 명이 어릴 적 장래희망으로 콜센터 직원을 꿈꿨을까? 기업가전문직을 꿈꾸는 이들은 많다. 이와 관련된 책도 많다. 그래서 오히려 ‘콜센터의 말’이라는 책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겉표지에 적힌 ‘습관적 말들 속 낯선 울림들’이라는 글귀에 매료되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진상 고객도 웃으면서 전화를 끊게 만드는 그런 비법에 관한 실용서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사람과 언어에 관한 인문학적 에세이이다. 또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저자는 일본에서 520일 동안 여행사 콜센터에 근무하며, 약자의 약자인 삶을 경험한다. 코로나로 인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환경에 처한 외국인 감정 노동자. 이를 통해 저자는 자신의 한계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글쓰기’라는 꿈을 키우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너무나 흔해서 무심코 쓰는 말에 대한 통찰이 드러난 부분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정반대의 상황에서 똑같이 하는 ‘안녕’이라는 인사는 '만남과 이별은 늘 함께 온다는 진리를 함축한 것 같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취업 불합격을 알리는 메일에 매번 등장하는 '대단히 유감이지만'이라는 표현이나, 정리해고 통지서에 적힌 '부득이하게'라는 표현이 주는 부드러운 잔인함을 집어내기도 한다.


  나 또한 익숙한 말속에서 낯선 발견을 한 경험이 있다. 나의 지인은 유독 “마음에 든다”라는 말을 자주 썼다. 이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니, '어떤 대상이 마음에 들어온다'라는 의미였다. 그 뒤로 나도 “좋다”라는 말이 내 감정을 표현하기에 부족할 때, 이 말을 쓴다. “네가 참 마음에 들어. 글자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왔어.”와 같이. 아주 작지만, 비밀스러운 보물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일기일회 할아버지’ 편이다. 일기일회는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을 뜻하는 일본식 사자성어라고 한다.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로만 이어진 일회성 만남이지만, 재일교포인 할아버지가 마치 잃어버린 손녀딸을 상봉한 듯 저자와 주고받은 대화는 깊은 여운을 남겼다. 또, 실적보다도 고객의 불편 해소에 집중하는 저자의 직업의식도 감동적이었다. 한 통이라도 더 받는 것이 인센티브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상황에서, 모바일 앱 다운부터 쿠폰 코드를 붙여 넣는 것까지 친절히 가르쳐주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생각해보면,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주어진 것 이상으로 자신의 일을 기쁘게 해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 최근 스타벅스에서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한 적이 있다. 야외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니었지만, 혹시나 바리스타가 불편할까 싶어 나는 다급히 마스크를 쓰려했다. 그런데 그분이 “고객님, 마스크 안 쓰셔도 됩니다.”라며 밝게 웃으며 커피를 건넸다. 커피 향보다 더 근사하고, 카페인보다 더 즐겁게 나를 깨우는 말이었다. 확실히 말에는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는 타인에게 쉽게 전염되는 듯하다.


  이자크 디네센은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고용이 불안정한 외국인 감정 노동자로서의 경험을 담은 책임에도, 이 책이 슬프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가슴에 끈질기게 남은 말을 '성찰의 촉매'로 저자는 성장한다. 감사하게도 이 책은 나에게도 성장의 촉매가 되었다. 나는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다정했었나. 내 말은 얼마나 따뜻했었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말이 있다.






  글쓰기 선생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피드백은 다음과 같다.

1. 전반적으로 잘 쓴 글이다. (흐뭇...^^)
2. 6 문단에 있는 경험담을 제일 앞부분에 위치시켜 독자의 눈길을 끌면 좋겠다.
3. 마지막 문장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말이 있다'에서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티가 난다.


  나는 세 번째 피드백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알고 보니, 선생님께서는 마지막 문장에서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를 떠올리셨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난 그 시를 몰랐다. 그러니 이 시를 아포리즘으로 쓴 것도 당연히 아니었다. 이 피드백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같은 텍스트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것은 천차만별'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몸소 깨달았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혹여나 내 글에서 뭔가 대단한 문학적 깊이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그분이 문학에 조예가 깊을 가능성이 많고, 혹여나 철학적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분의 통찰력이 우수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만약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흠... ㅎㅎ 오늘 글은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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