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6개월만에 용기내서 사먹은 그 집 바나나.
지하철 입구 앞에 화방을 개조한 과일 가게가
하나 있다.
처음엔 과일만 파는 줄 알았는데 머리꼭지가 노르스름한 콩나물도 보이고,
어느 날은 눈이 툭 튀어나온 못생긴 생선
한 마리가 보이기도 했다.
퇴근 길엔 거의 매일 그 가게 앞을 지나쳤는데
바나나를 몹시 좋아하는 나는 곁눈질로 '오늘의 바나나 시세'를 살피곤 했다.
대개 한 송이에 삼천원에서 삼천 오백원 사이였다.
짐짓 무심한 척 가게 앞을 지나쳐
집에 도착한 내 손엔
두 개 천 이백원짜리 (두 송이가 아니다!)
편의점표 바나나가 들려 있었다.
한 송이에 삼천원 내지 삼천 오백원 하는 바나나를 사면 일주일이 넉넉해질텐데
나는 매번 그 가게를 지나쳐 편의점에서 바나나를 샀다.
퇴근길에 삼천원을 미리 꺼내 손에 꼭 쥐고선
'오늘은 꼭!'이라고 다짐해보아도,
내 손안의 지폐가 행여 가게 사장님께 보일까 서둘러 가게를 지나쳤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내가 그 가게에서 바나나를 사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린 것은.
그 날은 일요일, 해가 느즈막히 저물어가며 하늘에 붉으스름한 흔적을 남기는 시간이었다.
가게를 지나치다말고 '오늘이 오늘이다' 싶어 가방을 뒤져 지폐 두 장을 꺼냈다.
어느덧 내 품엔 오동통하게 잘 익은 델몬트 바나나 한 송이가 안겨 있었다.
그 날은 한 송이가 삼천원도 이천오백원도 아닌 이천원이여서 놓치지 싫었던 걸까.
아니면 출근 전 날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하지 않아서
퇴근 후엔 나지 않던 용기가 생겼던 걸까.
1년 6개월만에 맛본 그 가게 바나나는,
참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