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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 Jul 06. 2018

[오늘의 생각] 또 다른 '자유'를 찾아서

- 시간의 자유, 경제적 자유를 넘어 새로운 의미의 자유를 고민하다.


[고3, 야자를 그만두고 얻은 것]


 “저, 다음달부터 야자 그만하겠습니다.”

 나는 선생님께 찾아가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때가 고3 5월, 6월 모의고사를 한 달 앞둔 때였다. 그리고 6시 10분에 하교해서 아파트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은 그렇다 쳐도, 내 저녁시간까지 학교가 관리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나의 결정이었다. 피곤하면 공부를 조금 일찍 끝내고 푹 자고 싶고, 집중이 잘 안 되는 날은 밖에 나가 음료수라도 한 잔 마시고 오고 싶은데 그런 자유를 박탈당한 채 7시부터 11시까지 정해진 시간표대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 못 견디게 싫었다.

 처음으로 저녁시간의 자유를 얻었던 고3. 그렇게 독서실을 다녀서 내 성적이 획기적으로 오른 것도, 모두가 걱정했듯 곤두박질 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 시간을 내가 관리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 그 “시간의 자유”가 좋았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


 시간의 자유를 넘어 해이함마저 느꼈던 대학생 시절을 끝으로, 시간의 자유를 회사에 헌납하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하며 저녁시간을 뺏기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그럴 때면 호기롭던 고3때처럼 “저, 이제부터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지만, 단 하루도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평일 낮, 카페에서 여유로이 책을 읽던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쯤, 업무지식을 쌓고자 접한 재테크 책에서 빼앗긴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책에서는 시간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경제적 자유”를 이야기했다. 종자돈을 마련해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면 지금보다 덜 일하고, 일하는 시간을 아껴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번다면, 부동산에 투자해서 성공한다면? 회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물론이요,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여유시간에는 필라테스도 배우고, 여행도 훌쩍 떠나버릴 수 있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의 자유도 경제적 자유로 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36만원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것]


 “경제적 자유를 얻어 회사를 떠나, 시간적 자유를 누리는 삶.” 그 삶을 목표로 부득부득 내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를 다니며 눈물콧물을 쏙 빼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36만원. 누군가에게는 한 달 월급, 누군가에게는 ‘시발비용’으로 지를 수 있는 마지노선, 모 브랜드의 가방 가격일 수도 있는 그 돈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1년 동안의 적금 목표액이었다.


 “딩동 ~ 100번 손님, 1번 창구에서 모시겠습니다.” 라고 호번하자, 다 낡아빠진 작은 구루마를 끌고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여기저기 긁힌 빛바랜 신분증, 신분증을 찾는다고 구루마에서 꺼내져 객장 바닥에 펼쳐진 소박한 살림살이, 액정 여기저기가 부서진 휴대폰. 한 달에 3만원씩 적금을 넣는다고 했다. 열심히 아껴서 지금까지 몇 달 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입금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조차도 형편이 여의치 않아, 만기를 채우지 못하고 해지해야 한다며 한참동안이나 통장을 꼭 쥐고 계셨다. 36만원이나 모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다며 속상해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쓸쓸하게 돌아가시는 그 분께 사은품 몇 개를 챙겨드리는 것밖엔 없었다.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왜 고액 예금주들에게만 우대이율이 붙는 것일까. 그들에게는 0.2%, 0.3%의 우대이율이 큰 의미가 없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우대금리가 한 끼 식사값이 될 수도 있는데. 10을 가진 사람이 90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진 못하더라도, 20, 30까지는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아닐까.




 [새로운 의미의 '자유'를 고민하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경제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를 누리며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로 인생을 마무리하게 된다면, 나는 정말 의미있게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많은 고민들과 생각들도 잠깐, 평균 15명의 대기손님을 응대하고 영업실적을 채우느라 바쁜 생활이 이어지며 그렇게 36만원 아주머니와 그날의 고민들은 답을 찾지 못한 채 바래져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나는 경제적 자유가 진정 내가 바라는 자유인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주식으로 돈을 번다는 건, 결국 누군가는 그 돈을 잃게 됨을 의미했다. 내가 권리금에 월세까지 받는 건물주가 된다는 건 지금의 비이성적인 주택시장의 구조를 견고히 하는데 일조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고 싶은 일을 돈 걱정없이 마음껏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도 충분하다면 내 인생은 행복해질까. 내가 바라는 진정한 자유는 시간적 자유일까, 경제적 자유일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의미의 자유인걸까.

     

아직도 그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오늘도 버스 안에 몸을 구겨놓고 회사로 향한다. 생각과 행동, 그리고 무수히 많은 고민의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그 때쯤엔, 36만원 아주머니의 소박하지만 값진 그 목표가 꼭 이루어져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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