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을 올리며 수신 참조에 두 명을 더 추가해야 하는데 잊어버렸다.
이건 내 잘못이다.
결재할 땐 아무 말 없던 박팀장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추가 안 했다고 김솔트 죽이네 살리네 한 모양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수 없이 많다.
아차 하는 순간에 나처럼 결재선에 참조로 넣어야 할 사람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잘해야지 하는 마음과 긴장이 지나쳐 일을 망친다거나
등등의 상황은 많지만 어느 팀장님이 그러셨다.
괜찮아 틀렸으면 수정하면 되고 빠뜨렸으면 다시 챙기면 돼 별거 아니야
실수를 한 당사자에겐 그것만큼 고마운 말이 없다.
실수로 인한 자괴감과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가시방석 같던 상황이
저 말 한마디로 하여금 다시 힘내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걸 보면
말로 천냥빚 갚는다는 속담은 진짜다.
하지만 그 팀장님이 우리 팀장님이 아니네.....
어쨌든 나는 내가 잘못한 일은 늘 죽이면 죽어야지 하고 살고 있는데
이번엔 죽이네 살리네의 강도가 좀 셌던지 자리에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팀원들의 카톡이 동시다발적으로 왔다.(단톡방은 없다)
아.... 대체 어느 정도의 강도로 말한 거지..?
얼마나 세게 말했길래 카톡이 이렇게 오지?
서둘러 자리에 앉자마자 수신인에 추가를 하려고 보니 이게 웬걸
평소엔 결재도중에도 추가해야 할 사람이 있으면 추가가 가능했는데
오늘은 어찌 된 일인지 추가가 되질 않는다.
경영지원팀의 나랑 같이 미생 찍는 동료에게 시스템이 이상하다고 SOS를 쳤고
경영지원팀장님이 추가하면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에 전화기를 드는 순간
추가되었다는 채팅이 날아왔다.
하..... 오늘도 이렇게 목숨을 연장하는구나...
경영지원팀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나의 첫마디는
-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
- 팀장님이 저 살려주셨어요
- 아하하하하 왜 박팀장이 죽인다고 그랬어요? 아니 뭘 이런 걸로 죽인대...
나의 목숨연장 소식에 다들 카톡으로 다른 팀 팀장님도 살려주려고 하는데
왜 우리 팀장님은 맨날 죽인다고 그러는 거냐고 투덜댔다.
옆에서 박팀장은 니 김팀장 때문에 산 줄 알아라! 하고 으름장 놓는 것은 덤....
회사도 하나의 집단생활이라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할 수 있다.
어떻게든 다 같이 힘내서 앞으로 나아가자! 하는 팀도 있고
각자도생 알아서 살아봅시다 하는 팀도 있다.
사원 입장에서 팀장님들을 보고 있으면 자기 팀이 아닌데도 물에 빠진 사람 일단
살려주고 건져내 주고 괜찮냐 그럴 수도 있다 해주는 팀장님한텐 존경심이 우러난다.
사람마다 그릇이 다른지라 그런 팀장님들은 팀장을하면서 경험치가 쌓여 그릇이 저절로 넓어졌거나
사람을 잘 챙겨주는 방법을 아는 분들이다.
그러나 일단 내 팀원이든 남의 팀원이든 물에 빠진 사람보고 그러게 왜 빠졌냐며 추궁하고
너는 물에 빠졌으니 곤장 백대!!! 이러는 팀장님들은... 원한을 사게 된다. 꼭... 그렇더라고요.
회사생활이 누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데 사원급한테 원한 사봤자 네가 뭐! 어쩔 건데 하면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부메랑으로 오긴 온다.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왕이면 이 험난한 회사생활에서 같이 살 방법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 회사는 곧 법정관리가 코 앞이니 같이 살 방법이... 없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