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회의시간
박팀장은 작정한 듯 얘길 꺼냈다.
아...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 하며 꺼낸 얘기는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구조조정 명단이었다.
부장급들과 몇몇 과장급의 이름이 오갔다.
연봉에 비해 업무량이 적고 어쩌고...
이름이 오간 부장님의 연봉을 어쩌다 알게 되었는데
회사에서 이 연봉을 주는데 플젝은 하나도 안 하려고 하시니
눈엣가시였던 모양이다.(연봉이 세긴 했다)
그 부장은 N부장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안될 것 같냐..
그리고 또 H부장이 원래 1순위로 거론되었으나
지금 하는 까다로운 플젝 투덜거려도 열성적으로 책임감 있게 하고
새로운 TFT구성하는 거 제일 먼저 자기 하고 싶다고 해서
이번에 살아남게 되었다. 누구 하나 그렇게 적극적인 사람 있었냐...
그리고 K과장 봐라 걔 연봉이면 같은 일 하는 사람 둘 데려올 수 있다.
대체 안될 거 같냐 바로 된다. 걔가 독보적인 게 아니다...
사업부장님 왜 본사 가신 줄 아냐 지금 거론된 인원 외 다수도
지금 정리하러 가신 거다..
하고 한참 얘기하다가
- 우리 영업 쪽은 뭐 없을 거 같습니까? 우리도 있어요
우리도 있기야 있지. 본인만 모르고 계실 뿐...
ㅇ부장님은 전쟁터에서 리틀포레스트를 찍고 계신 분이었다.
영업은 숫자로 본인을 증명해야 하나 그분은 증명하신 적이 없다.
- ㅇ부장님 지금 단독으로 하신 건이 한건도 없는 거 아십니까?
로 시작된 문책은 꽤 길어졌고 문제는 그분은 잘못된 방향으로 해탈하셔서
올해 초부터 꾸준히 박팀장이 압박을 주고 싫은 소리도 하고 했지만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시며 퇴근 후 운동 가는 게 제일 행복한 분이었다.
애초에 영업에 있었던 분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밀려나다가 우리 팀으로
밀려온 경우인데 처음에는 안 해 본 영업 하느라 고생이 많으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
운동화 쇼핑을 하고 계셨고 본인이 듣고 싶은 대로 듣고 기억하는 바람에
회의나 고객사 미팅 때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하셨으며 할 말과 안 할 말 구분을
안 짓고 그냥 해버리는 바람에 박팀장이 고객사에 싹싹 빌러 간 게 두세 번쯤 될 것이다.
최근 회식 때도 상무님이 슬쩍 던진 말에 자기는 잘하고 있으며(뭐를?) 지금 생활이
만족스럽고(당연하죠 일을 안 하시는데...) 너무 좋다고 해서 상무님을 정색하게 하셨다.
일을 안 하니 만족스러울 수밖에... 플젝을 신규로 수주해 오지도 않고
사무실에서 명상을 하시며 있는 플젝도 신경 안 쓰고 팽개쳐놔서 박팀장이 고객이랑 소통하고
고객도 ㅇ부장님이랑은 얘기 안 하고 싶어 했다.
일은 안 하고 있어도 급여는 꼬박꼬박 나오고 박팀장 잔소리는 한 귀로 듣고 흘리면 되고
고객을 만나러 가지도 않고 고객한테 전화해서 안 받으면 안 받네요 하고 넘어가고
그러다 보니 플젝 하나를 4월에 누가 소스를 줬으나 고객 만나기를 미루고
시작기간까지 시간 많이 남았다며 방치하다 얼마 전에 박팀장에게 걸렸다.
그렇게 배짱이처럼 계시면서 제가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듭니다 해서 우리를 기겁하게 했다.
평일에 서울 가는 출장은 어떻게든 안 가려고 악착같이 금요일로 날짜 조정을 했고
하다 하다 안되면 화상회의로 변경했다. 화상회의가 금요일이다?
이러면 화상은 무슨... 하고 악착같이 가셨다.
평일에 경상도에서 서울 당일치기 쉽지 않은 건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당일치기로 다녔는데 ㅇ부장님은 어떻게든 안 가려고 애쓰는 게 점점
미운털이 박혀갔다. 그리고 서울 출장을 갔으면 플젝 인원도 만나보고
고객사 임직원도 만나보고 등등을 하셔야 하는데 그냥 갔다만 오셨다.
금요일 오전 미팅 잠깐 참석하면 퇴근이고 그러고 서울 본인 집에 가면 되니까
본인 교통비 안 들이고 출장비로 처리하여 공짜로 기차 타고 집에 가고
일찍 끝마치고...그런 이유로 서울 출장은 ㅇ부장님이 매우 좋아하는 것이었으나
출장비를 지원하는 회사에선 출장은 계속 가면서 성과는 하나도 없고
플젝은 다른 회사에 번번히 뺏기고 오니
지금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어 질 만도....
아무튼 질책이 길어지다가 박팀장이
- 서울 보내드려요?
라고 하자 그때까지 숙이고 있던 고개가 펴지고 눈이 빛나셨다.
서울 보낸다는 뜻을 잘못 이해하신 거다.
서울에서 갈데없어서 여기까지 밀려난 건데 서울로 다시 가면 더 이상 박팀장처럼
사무실에서 뭐라 해도 밖에 나가선 좋은 말로 포장해 줄 사람이 없다.
아니 애초에 서울 본사에서 받아줄 부서 조차 없다.
이제 그만 하고 집에 가라고 들릴 수도 있는 그 말에서 서울이란 단어에 눈이 빛나는 걸 보고
또 듣고 싶은 대로 들으셨구나 싶었다.
그 회의가 끝나고 활짝 펴진 얼굴과 신난 발걸음으로 가는 부장님을 보며
어이가 가출한 우리는 거의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어떡하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