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닫힌 문4-완결

by 소설 쓰는 라떼


억수가 땅을 내리쳤다. 형형색색의 우산을 든 아이들의 무리가 갈라졌다. 아이들이 거의 빠져나간 뒤 커다란 쥐색 장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교문을 나서자 아기를 업은 젊은 여자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서울이모였다. 아기는 세찬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손을 뻗어 비를 만졌다. 여름 방학 내내 이모를 보지 못했다. 산책도 중단했고 이모의 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여시 같은 새댁한테 매일 놀러 가서 무슨 작당을 하느냐고 핀잔을 주던 할머니도 집에만 붙어있는 내가 답답했는지 되레 서울이모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눈치를 주자, 할머니는 새댁이 요새 통 보이질 않는다며 은근히 염려하는 기색도 보였다. 개학을 하고 초가을 태풍이 올라왔다. 연신 비가 내리는 날이 이어졌다. 이모의 슬레이트 지붕은 무사한지 아기는 많이 자랐을지 가끔 장독대에 올라 이모의 집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자주 하진 못했다. 그날 본 이모의 서늘한 눈빛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모가 먼저 날 찾아올 거라는 기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궂은 날씨에 아기를 업고 학교 앞까지 찾아온 것은 초름한 일이었다. 학교를 조금 벗어나 중학교가 근접한 찻길에는 분식 가게가 즐비했다. 만두를 쪄내는 커다란 솥에서 맛있는 김이 물물 피어올랐다. 이모는 춥다, 말하고선 내 팔을 잡아당겨 분식집으로 이끌었다.

"찬미야, 잘 지냈니?"

파르르 떨리는 이모의 손이 내 피부에 닿았다. 이모의 얼굴은 핏기가 하나도 없어 생기를 잃었다. 작은 얼굴의 광대는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뼈만 간신히 덮고 있는 얇은 살가죽이 흉해 나는 시선을 피했다.

"찬미야, 그날 많이 속상했지?"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이모를 대했지만 이유 모를 긴장감에 땀을 흠뻑 쏟고 말았다. 간간이 비 맞은 옷에 흥건하게 땀이 배자 비릿한 냄새가 몰씬 났다. 흐르는 땀줄기로 온몸이 스멀거렸다. 눈이 쓰렸다. 나는 비와 땀이 흐르는 팔로 연신 눈알을 비비고 닦아냈다.

"찬미야, 내가 뭐 하나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찬미야, 그러니까...... "

이모의 말을, 내가 먼저 잘라냈다.

"반지는 정말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그때도 말했지만 전 정말 그런 반지는 필요 없어요."

"그런 반지?"

"반지는 그 아저씨가 가져갔어요."

"그래? "

"제가 봤어요. 이모가 아기랑 병원에 가고 없던 날, 제가 봤다고요."

"그래 찬미야,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전 정말이지......"

"그런데 찬미야, 혹시 어젯밤에 우리 집에 다녀갔니?"

이모는 또 한 번 우왕좌왕하던 내 입을 가로막았다.

"어젯밤에 말이야, 승준이 잘 때 내가 잠깐 나갔었거든."

화를 누르는 나지막한 이모의 목소리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짐작케 했다.

"네가, 우리 승준이를, 좀 만진 것 같은데 말이지."

이모가 ‘만졌’냐고 묻는 대목은 여러 가지로 모호했다.

"찬미야, 우리 집에 올만한 사람은 너밖에 없잖아!"

이모의 눈에선 억수가 솟구쳤지만 울음소리는 전혀 새어 나오지 않았다.

“네가, 그랬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니?”

작은 얼굴에 올라온 붉고 푸른 핏대가 펑, 소리를 내고 터져버릴 듯했다. 나는 몸서리치도록 쇄폐적인 기분이 들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승차장과 하차장의 구분이 애매한 시골 터미널에 닿자 다음을 기약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다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무거운 박스와 가방을 버스 짐칸에 빼곡하게 넣고 도시로 향할 것이다.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또다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빈 버스를 채운다. 고향에 남은 사람들만이 창 밖에서 그들의 무사한 귀가를 빈다.

창밖의 할머니는 빨리 떠나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버스의 시동이 걸리고 조금씩 바퀴가 틀어질 때 나는 눈을 가린 채 연신 어깨를 들썩이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내가 흔드는 손을 할머니는 보지 못했고, 그렇게 열세 살을 앞둔 겨울방학 무렵 나는 고향에서 도망쳤다.

나는 고삐가 풀릴까 위태했던 나 자신을 자주 잡도리하곤 했다. 할머니는 그때 내가 당신의 뒤에서 작별인사를 고한 사실을 영영 알 수 없었다.

마을은 할머니가 생전에 말해준 것과 대부분 일치했다. 길목마다 세워진 가로등이 옛 기억을 더듬기에 충분한 길을 열어주었다. 논두렁이던 할머니의 집 앞은 신작로로 뻥 뚫려있었다. 마을 어귀쯤 되던 자리엔 어린이집과 주유소가 들어섰다. 가정집을 개조하여 각종 보신용 음식을 파는 식당들도 생겨났다. 외관상으로 약간 변한 집도 있었고 아예 허물어 없어지거나 새로운 형태의 주택도 눈이 띄었다.

신작로를 건너자마자 바로 할머니집 앞에 닿았다. 담벼락을 감싼 이름 모를 식물의 줄기와 잎사귀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 덩굴을 만들었다. 유월을 앞둔 계절임에도 나는 한기를 느껴 몸을 움츠렸다. 이슬 서린 축축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열두 살을 넘긴 이후로 와본 적이 없으면서도 자주 찾아왔던 것처럼 반복된 잔상이 드러나고 있었다. 매번 돌아서야 했던 할머니의 집은 우거진 수풀에 휩싸여 있었다. 가시덤불이었다.

대범하게도, 나는 불을 붙였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마른 덤불에 휩싸인 할머니의 집은 결코 타오르지 않았다. 까치발을 하고서 안쪽을 들여다보았지만 할머니는 문을 꼭 걸어 잠그고 기척이 없었다. 담벼락에 조심스레 손을 댔다. 까슬한 이파리의 느낌이 닿자마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때 마당을 밝히는 주광등이 켜지고 드르륵, 미닫이 형태의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같이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던 할머니의 치맛자락 스치던 소리가 눈앞을 스쳤다. 나는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 재빨리 손바닥에 휘감았다. 가방 거죽에 걸린 억센 줄기를 힘껏 잡아당기자 녹슨 빨간 대문이 몸을 드러냈다. 부르르 떨리는 온몸에 마지막 힘을 실었다. 쓰라린 느낌을 완강히 밀어냈던 것처럼 힘껏, 아주 힘껏, 닫힌 문을 밀쳤다.



망각은 방패였을까.

서울이모와 마지막으로 대면했던 날, 나는 아기 얼굴에 난 붉은 생채기를 뚜렷하게 보았다. 이모가 아기를 안고 어수선하게 움직일 때, 그녀의 가녀린 팔목을 스친 깊은 자국 또한 선명했다. 이모에게는 아기를 위협한 인물이 당장 필요했다. 그녀가 찾는 범인이 다름 아닌 나라는 드라마틱한 반전은 알맞은 위로와 해결책이 될 수 있었다. 하여 나는 침묵했다. 동시에 교묘하게 그녀를 훈계했다.

열두 살의 어린아이로부터 감쪽같이 외면당한 무거운 진실, 그것은 매일같이 버려진 이모의 편지들과 일생을 마치는 직전까지도 언제 한 번 안 오나, 물어보던 할머니의 애끊는 목소리, 회피로 이루어낸 거짓 멍에, 용서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그 아이. 그 아이가 별을 세려다 갇힌 깜깜한 우주 한편에서 쪽잠을 자며 살았다.

스스로 땅을 짚고 일어나야 했던 열두 살의 소녀는 할머니 집을 둘러싼 무성한 수풀에 매달려 무릎을 꿇는다.

“할머니”

“문을, 이 문을 좀 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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