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대강빌라1

대강빌라에서 시작한 신혼

by 소설 쓰는 라떼



대강빌라 앞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였다. 오전엔 아기와 100일 사진을 촬영하느라 끼니도 거른 채 셋이서 씨름했고, 늦은 오후쯤 모임에 나가 이른 저녁을 먹었다. 시끄럽고 자극적인 시야에 연신 칭얼대던 아기는 카시트에 누운 채로 쌔근댔다. 8월을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자기는 애기나 재우면서 기다려.

아내가 눈을 부릅뜨고 비장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잠시 후 맞은편 대강빌라 201호에 환한 불이 들어왔다. 나는 에어컨을 껐다 켰다 반복하며 아기와 대강빌라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희끄무레한 덩어리들이 201호 창문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내가 화들짝 놀라 아내에게 전화를 할 참에는 그것들이 창문 틈사이로 무지막지하게 탈출하여 2층 전체를, 아니 대강빌라 전체를 감싸는 듯 보였다. 나는 연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아내가 무사한지 의심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는 사이 아내는 바로 위층 옥상으로 올라가 여기저기 손을 흔들었다. 큰 소리로,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죄송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계속 허리를 굽실거렸다. 주변에 고만고만한 높이의 빌라 옥상과 지상에서 여러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이야? 어디야? 어수선한 와중에도 아내는 불안해할 나를 걱정하며 문자까지 보내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놀라지 말고 기다려. 이제 곧 청소 시작할게.’

작은 소동이었다. 가장인 나는 시원한 차 안에서 아내만 기다렸다. 새벽 1시쯤 아내가 모든 상황을 무마시키고 나서야 아기를 안고 대강빌라 201호로 들어갔다. 오래됐지만 대강빌라 특유의 아늑한 냄새가 있다던 아내의 말을 체감하는 그런 날이었다. 나는 샤워를 하고선 옷도 입지 못하고 이부자리에 쓰러졌다. 아내는 그날도 서너 시간마다 아기를 재웠을 것이다.

아내가 출산 후 한 달여 정도 집을 비웠더니 말끔하게 청소해놓고 살았던 우리의 첫 보금자리는 이름 모를 벌레들의 소굴로 변해있었다. 집주인이 없는 틈을 타 여러 종들이 모여 대놓고 놀아났는지 이 방 저 방에 널브러진 죽은 벌레 더미들은 아내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은 함께 지냈지만 처형 집에 있는 이주일간은 불편한 마음에 나는 당직실이나 찜질방, 미혼의 후배들 집에서 근근이 버텼던 터였다. 아기가 오기 하루 전쯤 일당을 주고 아주머니를 불러서 청소를 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성격 급하고 깐깐한 아내는 나에게 말한 날보다 하루 앞당겨 집에 도착해 붉으락푸르락했다. 대강빌라 201호의 열렬한 팬이었던 아내는 50센티 만한 아기를 안고 들어와 돌변했던 것 같다. 그 순간 아내는 아마 깨끗한 아파트에 대한 열망을 처음 품었으리라.

-마음이 조금 바뀐 게 어때서 그래? 난 의도가 순수하잖아.

주로 노동이민자들이 모여 살았다는 유럽의 아파트와 달리 ‘부’의 조건이 된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아내는 대단히 비판했다. 아니, 비판했었다. 아내는 일개 강사 자리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를 희망했다는 쪽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억지를 써서 위협적인 질문을 해대는 양아치 같은 학생을 두고도 절대 지지 않겠다며 평소 글자들을 많이 읽고 되새기는 편이었다. 여러 가지 실감나는 비유와 논리적인 듯 비논리적으로 말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어쨌든 ‘부’를 추구하고 축적하는 것이 인문학적이지 않고 속물이라 비약할 수는 없지만 나는 아기를 낳고 은근슬쩍 바뀌는 ‘집’에 대한 아내의 변화된 언행들을 종종 포착해서 놀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선한 부자’ 못 들어봤어? 라든가, 난 어디까지나 주거의 개념이지 소유의 개념은 아니잖아, 하고 되받아쳤다.

-일단 모조리 죽여야겠어.

저녁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던 아내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약국에서 아주 센 약으로 하나 사오겠다는 나의 말에 아내가 내민 것은 훈연킬라,라는 연막탄이었다. 강력한 살충 성분이 연기로 침투해 숨어있는 벌레들까지 모조리 죽인다고, 적혀있었다. 여기서 오래 살 것도 아닌데 대충 눈에 안 보이게 잡고 지내면 되는 거지 무얼 그리 야단법석인가 싶어 잠시 말다툼을 벌였다.

-난 시골에서 자랐어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야. 이 건물에 사는 모든 벌레들이 우리 집으로 이사 왔다고.

-집 앞이 바로 동사무소인데 신고라도 하고 시작해야지. 여기에도 소방서에 미리 알리라고 쓰여 있잖아.

아내는 가슴을 탁탁 두드렸다.

-언제 이사 갈지도 모르고, 내일 당장 이사를 가더라도 이 벌레더미를 본 사람은 절대 이 방에 아기 못 눕혀.

아내는 지금이라도 당장 시작하고 싶지만 내일 있을 아기의 사진 촬영과 다른 일정 때문에 이른 잠을 청하기로 간신히 합의했다. 아기 옆에 누운 아내는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아기 같이 칭얼거렸다. 그렇게 아내의 뜻대로 하루 종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토요일 밤11시에 계획이 실행됐던 것이다. 아내가 꽤 차분하고 편안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행여나 산후 우울증이 온 것은 아닐지 염려되었다.

-아직 두 달도 안 키웠는데 우울증은 무슨. 이놈의 벌레들 때문에 우울증이 오겠어.

그 후로도 벌레들은 박멸되지 않았다. 우리는 예쁜 아기와 온갖 벌레들과 뜨거운 여름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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