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찬란한 종녀 2
종달이는 이제 열 살이다. 구 남매 중 막내이자 집안 장손이라는 타이틀을 쥐었으니, 그럴싸한 탄생 신화 한 편쯤은 필요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 넷째 누나의 이름을 종녀로 짓게 하고, 5년 뒤에나 태어난 것 자체가 인고의 시간이었겠으나 팔삯둥이로 세상에 나온 서사는 한 겹 더 신성한 당위를 부여했다. 종녀의 부모님이 이름 모를 잡신들을 향해 절하고 돈을 갖다 바칠 명분도 함께 만들어 준 셈이다. 그런데 종달이는 생각보다 튼튼했다. 종녀의 말에 따르면 그랬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멀쩡한 종달이를 눈앞에 두고도 노심초사 불안에 떨었다. 절에 갔다가 무당에게 갔다가 산 깊은 동굴까지 진출하여 기진맥진해지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다 무시무시한 언변의 달인을 만났다. 순식간이었다. 사촌이 버려놓은 어촌의 작은 집으로 온 가족 모두 야반도주를 하기까지는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종녀의 부모님은 종달이의 폐 건강을 위해 공기가 맑은 시골로 이사를 온 것이라 치장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았다. 종녀는 물론 눈칫밥 먹은 그 집안 딸들이 모를 리 만무했다. 종달이는 종녀가 차려주는 머슴밥을 먹다 사레가 들렸으면 들렸지, 기관지나 폐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종녀와 종달이. 9남매 중에서도 종녀와 종달이만 남매처럼 '종'자를 돌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종녀는 넷째이다. 종녀와 같은 마칠 '종'자를 가졌으면서도 통달하다는 의미의 '달'자를 써서 상반된 의미를 붙여주었다. 종녀에게는 굴레를, 종달이에게는 모든 학문의 정점을 이루는 경지를 둘러주었다.
종달이는 가벼웠다. 아직 열 살이기는 하나 적어도 그늘진 구석이 없다는 뜻이다. 안팎의 소란을 제 몫으로 가져가기에는 투명한 영혼을 가졌다. 아홉 명의 여자들의 호위를 받고 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부모님의 소원대로 종달이는 학문에 통달하려는 듯 온갖 책을 섭렵하며 중얼거렸다. 누나들을 쫓아다니며 이런저런 퀴즈를 내며 종달거렸다. 그리고 막내답게 징징댔다. 종녀의 부모님도 그걸 인정한다는 뜻일 게다. 박사님, 박사님, 우리 징징 박사님, 하고 불렀으니 말이다.
나는 매일 궁금했다. 종녀는 구 남매 중에서도 넷째일 뿐인데, 왜 종달이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녀야 하는지가 특히 궁금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종녀는 그 문제에 관해서 내게 이해의 시도를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 그건 말이다, 이해...... 가 아니라 그냥 사는 거지
나는 종녀에게 가끔 몇 학년 꿇은 게 아닌지 묻곤 했다. 고작 열다섯 살의 소녀가 자신의 억울한 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 종녀를, 종녀 같은 사람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서글퍼진다. 감정의 높낮이 없이 내던져진 삶에서 종녀가 버티고 있다. 물론, 종녀는 아니라고 한다.
- 그냥 사는 사람은 그냥 살아지지만 버티면 주저앉아.
- 무슨 소리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종녀의 가족은 내게 새로운 세계였다. 작은 어촌을 벗어나지 않고도 경험할 수 있는 생경한 풍경 말이다. 종녀는 나의 혼란한 가족 관계 안에서 새롭게 애착을 갖게 된 대상이 되었다. 아픈 고모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극심하게 싫어서 틈만 나면 종녀의 옆으로 갔다. 때론 친구 같고, 때론 언니 같고, 때론 선생님 같고, 때론 엄마 같기도 한 나의 찬란한 종녀.
종녀는 나의 지질한 학교 생활의 방패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