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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Jun 26. 2024

친정엄마의 된장찌개는 매일 먹고 싶어

나의 소울푸드

송송송송, 애호박 써는 소리.

탁탁탁, 양파를 써는 소리.

쑹덩쑹덩, 대파와 청양고추 써는 소리.

퉁퉁퉁, 두부 써는 소리.

텅텅텅, 감자 써는 소리.


멸치와 된장이 뜨거워진 물에서 우려 지고 어우러져 구수하고 큼큼한 향을 풍길 때쯤 다진 마늘과 호박, 양파, 대파, 청양고추, 두부, 감자가 퐁당퐁당 다이빙을 한다. 이제 본인들의 맛과 향을 국물에 푹 녹이는 작업만 남았다.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의 리듬을 타고, 곧 먹게 될 설렘 들뜬 내 마음도 자꾸만 들썩인다.


"벨라야, 밥 먹어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마의 부르심. 책상 의자를 거세게 밀어 재끼고 한달음에 식탁으로 달음질해 식탁 의자에 철퍼덕 앉는다. 내 허기짐을 눈치채신 엄마는 뚝배기의 뚜껑을 빠르게 열어주신다. 찌개의 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전등까지 닿을 기세로 위로 위로 뻗어 올라간다. 아까의 찌개 내음보다 뚜껑이 덮인 뚝배기 속에서 우려 져서 더욱 깊어진 구수한 향침샘을 자극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숟가락을 뚝배기에 쑥 집어넣어 국물을 얼른 입에 들여보내고 있다.

"크아."

탄산도 아닌데 '' 발음이 절로 난다. 청양고추로 칼칼해진 국물이 혀에 닿고 목으로 넘어가니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개운하구나. 하루의  스트레스는 된장찌개 국물 한 입과 함께 세이 굿바이.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된장찌개를 참 자주 끓여 주셨다. 너무 뜨거운데도 보들보들한 두부가 입 안에서 찰랑 거리다 혀의 놀림에 후드득 부서질 때의 그 식감이 너무 좋아서 '하아하아' 입을 벌리고 공기 중에 식혀가면서 참 맛있게 먹었다. 된장찌개가 나오는 날엔 동생과 밥그릇에 코를 박고 먹느라 고개를 들 새가 없었다. 나중에 안건대, 엄마는 두부를 좋아하지도 않으시면서 우리 남매를 위해 찌개에 듬뿍듬뿍 넣어주셨다는 거다. 그 이야길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되게 죄송스럽고 엄마가 짠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두부를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걸 태어나고 30년이 지나서야 알다니. 친구보다도 친밀하고 누구보다 엄마를 아주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섣부른 착각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의 전부를 알 수는 없다는 것을. 엄마와 함께 식사를 한 날들이 3만 일은 족히 넘을 텐데 그것 하나를 알아채지 못하다니.


옛이야기 중에 생선을 구우면 항상 머리만 드시는 어머니를 보고 아들이 '엄마는 왜 항상 생선 머리만 드시냐'라고 묻자 엄마가 대답하시길, '엄마는 생선 머리가 제일 맛있어그런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장성해서도 어머니께는 꼭 생선 머리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그 아들과 내가 뭐가 다른가.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서운해 안 하신 게 참 다행이다. 속으로는 하셨으려나. 아니길 간절히 바랄 수밖에.


부부는 일심동체라 했던가. 남편에게 일전에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이냐 묻자 조금도 망설임 없이 된장찌개라는 대답을 한 게 생각난다. 시어머님 살아 계실 때 시댁에 어머님은 항상 신랑이 제일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내오시곤 했다. 아들 내외 온다고 손수 만드신 갖가지 반찬들이 무색할 정도로 남편은 된장찌개의 건더기와 국물을 밥 위에 부어 싹싹 비벼 맛있게 먹었다. 시어머님은 친정 엄마와는 다르게 국물이 많지 않은 자작한 느낌의 된장찌개를 끓이셨다. 나도 워낙 된장찌개를 좋아하니 밥에 비벼 먹으면 어머님 찌개는 로 또 수더분하고 담백한 맛이라 좋았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된장찌개, 아니 어머님의 된장찌개를 다시는 먹을 수 없는 남편이 가장 안쓰럽게 느껴질 때는, 내가 된장찌개를 친정 엄마께 배운 대로 끓여냈을 때다. 나는 어머님의 그 느낌을 낼 수가 없고 어머님께 레시피를 여쭤볼 수도 없는 상황에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 그래도 내가 끓인 찌개를 남김없이 맛있게 먹는 남편을 보면 식성이 까다롭지 않은 사람임에 감사한다. 감성적인 대화는 통하않지된장찌개를 포함해 전반적인 입맛은 꽤나 잘 맞는 우리여서 참 다행이다.

 

엄마, 아빠가 된장찌개 마니아니라 그런지 딸아이도 된장이 들어간 음식은 , 찌개, 나물 등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된장찌개는 이제 나의 소울푸드에서 더 나아가 우리 가족 모두의 소울을 책임지는 막강한 녀석이 되었다. 해외여행 가서, 피곤해서 입맛이 없을 때, 외식과 배달음식에 질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된장찌개. 그중에서도 단아한 주방에서 친정엄마께서 사랑 가득 담아 끓여주시던 그 된장찌개. 그런 내 사랑 된장찌개는 최고의 음식 친구, 잊지 못할 평생의 소울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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