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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Dec 18. 2024

서태지 닮았다, 너?

우리들만의 추억

서태지와 아이들에 한참 푹 빠져있던 1995년. 4집 컴백홈 무대를 보고 또다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수가 스노보드복에 고글, 스노 모자를 쓰고 나와 격렬한 댄스를 추다니. 게다가 가출한 청소년들에게 집으로 돌아오라는, 이전 앨범에서처럼 이번에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곡이라니. 도대체 서태지 오빠의 한계는 끝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로 아주 작정을 한 무대였다. 게다가 전주 부분에서 양현석 오빠와 이주노 오빠가 서로 고리를 만들어 몸을 통과하는 안무에서는 괴성을 지르고 말았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세련되고 인상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안무를 만들 수 있는 거지? 음악천재 서태지, 안무천재 현석+주노 오빠의 조합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밖에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4집 앨범에 들어있는 다른 수록곡들은 또 어떻고. 특히나 6번 트랙의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는 완전 나의 취향저격이었다.


https://youtu.be/doQ-QBFatUE? si=_1 kV4 uxN7 wHJBkPC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천구백구육 아직도 수많은 넋이 나가있고
모두가 돈을 만들기 위해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걸 나는 볼 수가 있었지
넌 항상 그 머릿속 구석엔 그대를 떠올리면서
복종을 다짐해
지금 우리는 누굴 위해 사는가
그에게 팔과 다리와 심장을 잡힌 채
넌 많은 걸 잃어가게 됐네
우리의 일생을 과연 누구에게 바치는가
정복당해 버린 지구에서 쓰러져가 버리는 우리의 마음
정복당해 버린 지구에서 쓰러져가 버리는 우리의 마음
돈의 노예 이미 너에겐 남은 자존심은 없었어
그들이 네게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해
언제나 항상 우리가 볼 수 있던
그 모든 것들은 우리들에게 가려져
네 눈을 멀게 했어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세상)
그는 모든 범죄와 살인을 만들었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을 죽이고 있어
전쟁, 마약, 살인, 테러 그 모든 것을 기획했어
넌 많은 걸 잃어가게 됐네
우리의 일생을 과연 누구에게 바치는가
정복당해 버린 지구에서 쓰러져가 버리는 우리의 마음
정복당해 버린 지구에서 쓰러져가 버리는 우리의 마음
정복당해 버린 지구에서 쓰러져가 버리는 우리의 마음
정복당해 버린 지구에서 쓰러져가 버리는 우리의 마음
돈의 노예 이미 너에겐 남은 자존심은 없었었어
그들이 시키는 대로 끌려다녀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찔러 넣는 까맣게 썩어버린 돈들
돈으로 명예를 사고 친구를 샀던 썩어버린 인간들
넌 많은 걸 잃어가게 됐네
우리의 일생을 과연 누구에게 바치는가
정복당해 버린
쓰러져가 버리는
정복당해 버린
쓰러져가 버리는
정복당해 버린 지구에서 쓰러져가 버리는 우리의 마음
정복당해 버린 지구에서 쓰러져가 버리는 우리의 마음
돈의 노예 이미 너에겐 남은 자존심은 없었었어
그들이 네게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해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땐 가사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악기 사운드와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그 자체로 음악에 흠뻑 취했던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어보니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린 가사였구나. 20대의 태지 오빠는 우리들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남겨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철없는 고등학생은 별생각 없이 가사를 읊고 엉덩이를 흔들며 신나게 춤추었으니 이를 어째쓰까.


아무튼 내 최애 서태지와 아이들 4집 포스터 모으랴, 방송 찾아보랴, 라디오녹음하랴 정신없이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우리 반 날라리들이랑도 친분이 있나에게 그 무리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야, 너 서태지 닮았다?"

어머, 이게 무슨 말? 나는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겠어서 "어? 뭐라고?" 되물으니(어쩌면 한번 더 듣고 싶었는지도) "너 서태지와 아이들에 서태지 닮았다고. 이야~ 똑같이 생겼다." 주섬주섬 짝꿍에게 거울을 빌려 그 안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우리 때에는 학교에서 단발머리를 해야 하는 규정이 있어 머리를 길게 기를 수가 없었는데 똑 단발에 핏기 없는 하얀 피부, 깡마른 얼굴형이 비슷한 것도 같았다. 그래도 어찌 감히 내가 서태지 오빠를 닮을 수가 있을까나. 는 서태지를 싫어하나 아니면 날 좋게 생각해서 말해준 건가, 아니면 별 뜻 없이 그냥 던진 말인가 의도파악이 안 되어 헷갈렸다.


우리 때 날라리들은 지금의 날라리들이랑은 차원이 달라서 귀 뚫고 집에서 맥주로 염색하고 남자친구 사귀고 하는 정도면 날라리라고 불렸던 것 같다. 나름 또래들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숙하고 패션에도 남다른 감각이 있어서 교복 하나를 입어도 맵시 있게 몸에 핏 되게 바짝 줄여 입었다. 선도부 선생님이 매번 들고 다니시는 몽둥이로 얻어맞아도 절대 굴하지 않고 본인들의 미적 감각을 마음껏 발산하꽤나 뚝심 있는 소녀들이었다. 그런 멋쟁이 친구에게 '서태지 닮았다'는 건 아주 근거 없는 소리도 아닐 터였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하교 후 집에 가서 엄마께 이 기쁘고도 희한한 소식을 전했다. 엄마는 "그래, 지금 보니 서태지랑 진짜 닮았네" 하시는 다. 할렐루야!!! 지인 두 명이 인정한 거면 사실 아니냐며 끼워 맞추기 대장인 나는 그 이후 서태지와 비슷한 비니를 하나 샀다. 이제 나는 서태지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서태지로 날 착각하면 어떡하지, 사인이라도 해달라고 하면 곤란한데,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길거리를 다녀봤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고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 하고 싶던 정신 나간 빠순이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그 시절의 기억은 참 기분 좋고 짜릿했던 것 같다. 공부에 치이고 시험에 치이며 하루하루를 답답하고 삭막하게 살아야 했던 시절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기에 내 숨통이 트였고 불끈대는 사춘기의 격변하는 감정들을 긍정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신나고 그 에너지로 또 학교에 가고, 다녀와서 지칠 때 음악 속에서 위로를 받는 반복된 삶 속에서 한 발씩 매일을 내딛을 수 있었다. 음악은 내 생명과도 같은 존재인데 그 안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다는 게 감사하고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우리들만의 추억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다우니까.



소리쳐 주던 예쁘게 웃던 아름다운 너희들의 모습이 좋았어.
함께 기뻐하고 모두 다 같이 웃고 서로를 걱정했던 우리들만의 추억들.

-서태지와 아이들, <우리들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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