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잘 지키면 떡이 나오나요?

제9화

by 벨라Lee

노트북을 열고 온라인게임을 한다.

패드를 켜고 그림을 그린다.

TV를 켜고 만화를 본다.

음악스트리밍 앱을 열어 감상을 한다.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논다.

이상의 것들은 시아가 평소에 너무나 즐겨하는 일들이다.

패드로 드로잉에 열중하는 딸아이

규칙을 지켜요

하지만 이것들에는 나름 규칙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약속한 시간에 바로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1시간만 하자고 정했으면 정말 한 시간이 지나면 바로 노트북을 덮고, 패드로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있어도 그리기를 마친다. 만화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으면 끝난 후 곧바로 끄고, 친구랑 30분만 놀기로 했으면 그리 놀고 집에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것들을 제시간에 끝낸다 해서 이후에 징징대기, 우기기, 짜증내기는 없다. 굉장히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독서의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규칙을 지켜야 다음날에도 본인이 하고 싶은 놀이들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유아기 시절부터 몸과 마음에 익혔기 때문이다.


게임이나 그림 그리기, 만화를 시청하는 것은 모든 숙제들이 끝났을 경우에 가능하고 완료가 되지 않았다면 그날은 이것들이 불가능하다. 음악 스트리밍은 주로 숙제할 때 듣는데 이어폰을 끼고 듣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청력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들어서 요즘엔 학원이나 학교 가는 길에 잠깐씩만 듣고 있다. 물론 휴대전화의 사용시간이 30분 제한으로 걸려있어 오래 듣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러나 아이는 투정이 없다. 어차피 말해봐야 통하지 않는 일관된 엄마이기 때문이다. 하교하면서 친구들과 놀 수 있냐고 물어보면 그날그날 사정에 따라 30분~1시간 정도 놀고 오라고 시간을 정해주는데, 아이가 떠나야 하는 시간쯤 되면 전화나 문자가 온다. 더 놀고 싶은데 가능하냐 혹은 이제 나가고 있다 등등의 확인 메시지를 보내오니 안심이다. 그러면 상황을 봐 흔쾌히 시간을 늘려주거나 이젠 안된다고 집에 돌아오라고 이야기해 주면 알겠다며 바로 수락을 한다.


엄마의 일관성이 중요해요

내가 무섭게 윽박지르고 깐깐한 엄마라서 시아가 이렇게 순순히 따르는 것일까? 말을 듣지 않았을 경우 내려지는 큰 벌이 무서워서일까?

비법은 한 가지다. 바로 엄마의 일관성이다.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좋게 좋게 허용을 해주면 자기 컨트롤 능력이 아직은 부족한 어린아이들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하염없이 놀고 하염없이 떼를 쓰며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관철시키려 한다. 부모가 룰을 지키겠노라 굳은 마음을 먹어도, 아이가 울고 불며 괴로워하면 마음이 금세 약해져서 '에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어린아이와 힘들게 기싸움을 하며 이 난리를 피우나.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울 아기 더 이상 화나게 만들지 말자. 성격만 나빠지지'라며 아이의 말을 결국은 들어주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감각적으로 이런 엄마의 흔들리는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다음, 그 다음번에는 이전보다 더 센 강도로 엄마의 마음을 강하게 쥐고 흔들게 된다. 그냥 누워서 울던 것이 때리고 던지는 것으로 악화가 되면서 아이도 엄마도 너무나 힘든 시간들을 겪게 된다. 이는 훈육의 악순환이며 좋은 습관 기르기는 점점 딴 세상 얘기처럼 아득해진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내가 일관적인 훈육을 하기로 결심을 한 큰 계기가 있었다. 나는 미혼시절부터 오은영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TV 프로그램을 매주 챙겨보는 애청자였다. 아이들을 무척 좋아해서 나중에 내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아 키운다면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지 미리 공부할 겸 참 열심히 보았던 것 같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었다. 떼를 쓰며 엄마를 마구 때리는 아이였는데, 오은영 박사님이 그 아이를 앉혀놓고 두 다리를 선생님 다리 사이에 넣어 꽉 붙여놓고는 아이의 두 팔을 뻗게 해서 선생님이 꼭 붙들고, 그 아이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셨던 부분이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도 아닌 사람의 이런 행동이 당혹스럽고 짜증스러우니 울며 불며 극심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선생님 얼굴에 침을 뱉더니 오줌이 마렵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싸버렸다.


그러나 오은영 박사님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으시고 침착하고 의연하게 아이를 쳐다보며 계속 같은 자세를 유지하셨다. 손을 뿌리치고 빠져나가려는 아이에게 중간중간 `00 이가 울며 떼쓰는 걸 그만두면 언제라도 선생님이 팔을 풀어줄 테니 울음을 그치라'라고 하셨다. 이렇게 힘겨운 대치상황이 한 시간 이상 이어졌고 결국 아이는 탈진한 건지 포기한 건지 결국 울음을 뚝 그치게 되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이제 진정이 되었냐고 차분하게 물어보시고는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며 앞으로는 떼쓰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받아 내셨다.

출처: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SBS Plus 공홈

사실 나는 이 영상을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저런 난리 속에 선생님은 몇 시간 동안 침착하게 아이를 기다려줄 수가 있지? 나 같으면 일단 쉬 마려우면 화장실부터 다녀오라고 할 텐데, 자리에서 쉬를 할 망정 일말의 타협도 해주시지 않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그런 모습이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일관적이고 뚝심 있는 모습으로 크게 다가왔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도 나중에 아이를 키우면 저 정도의 일관성은 가지고 육아를 해야겠다는 작은 목표의식이 이 날 생기게 되었다.


약속은 꼭 지켜요

이후로 시아를 키우며 다른 건 몰라도 일관성 한 가지는 철저히 지켰다. 무엇을 사주겠다, 어디를 놀러 가겠다, 어떤 놀이를 해주겠다, 책을 읽어주겠다 등의 약속을 하면 무조건 지켰다. 나중에, 다음에는 없었다. 일단 시아와의 약속이 가장 1순위였다. 대신 몇 시까지 만화를 본다, 몇 시에 자러 들어간다, 양치를 꼭 하고 자야 한다, 잠옷을 갈아입고 잔다 등의 규칙도 시아가 반드시 잘 지켜야 했다. 엄마가 먼저 잘 지킨 약속들, 번복이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면 아이는 자연스레 약속과 규칙은 꼭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소리와 체벌이 나가지 않아도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행이 가능했다.


주도적으로 행동해요

이렇게 습득한 태도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점 자기 주도적인 태도로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다. 맨 앞에서 언급했던 시아가 좋아하는 놀이들에 있어서도 약속을 정한 시간에 알아서 끝낼 수 있었고 이런 습관은 학교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다음 수업을 위해 교과서를 미리 꺼내 놓고 살펴본다거나, 주변 정리를 잘하라고 담임 선생님께서 한 번 말씀하시면 이 또한 중요한 약속이라고 생각해서 꼭 지킨다(이것은 추후 담임 상담을 가서 직접 들은 이야기들이라 나름 신빙성이 있다). 학원 숙제도 어느 날부터 본인이 체크하고 채점한 뒤 가방에 넣어 현관 앞에 놓는다. 내가 일일히 체크해서 했냐 안 했냐 하지 않아도 한 가지씩 본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차례로 늘려 가서 신기하게도 이렇게 자동화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자기 주도적 학습

동기화되어 스스로 학습과정을 계획하고 실행해 나가는 학습형태


하지만 시아도 아직은 어린아이라서 숙제 체크를 제대로 안 해 숙제를 빼먹거나 학교에 물건을 두고 오거나 소지품을 잃어버리고, 간혹 학원 책을 집에 두고 가는 날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추후에는 실수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으로 더 꼼꼼히 챙기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자기 주도적인 아이는 일관성 있는 습관들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며,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본인에 대한 믿음과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탄탄하게 쌓아 온 부모와의 약속은 아이가 크면서 본인과의 약속으로 발전하고, 이는 지속성을 가지고 아이의 미래와 함께 걸어 나가며 빛을 발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 일관성 있게 말하고 행동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