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첩을 뿌릴 수 없게 된다면...

by 벨라Lee

내가 케첩을 좋아한다고 따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메인 음식이 아니라 그에 곁들여지는 소스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뿌려먹어서 잘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케첩을 안 뿌리면 잘 못 먹는 음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케첩 마니아라는 것을.


우리 가족이 자주 가는 김치찌개집이 있다. 거기엔 돼지고기를 넣고 바글바글 끓인, 엄마가 해주신 맛과 유사하게, 구수하면서도 얼큰하게 찌개를 끓여내는 곳이다. 이미 우리 동네에서는 알아주는 맛집이다. 이 가게에서는 불에 구운 얇은 돼지고기도 달큼하면서도 불향이 나 김치찌개와 꼭 시켜 먹는 메뉴 중 하나이고 마지막으로 길고 두터운 계란말이도 일품이다. 아예 1층 출입구 한쪽 편에서 이 계란말이만 따로 굽는 아주머니가 계실 정도인데, 그 실력이 장인급이시다. 달걀 푼 물을 달구어진 넓은 팬 위에 치익 부어 뒤집개로 착착착 말아내시는 솜씨가 진짜 기가 막힌다. 바라보기만 해도 신기한데 맛은 더 신비롭다. 부들부들하면서도 단단한 계란의 질감, 짜지도 달지도 않은 적당한 간은 칼칼한 김치찌개랑 먹음 아주 찰떡궁합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처럼 김치찌개만 시키지 않고 3종을 세트처럼 시켜서 먹는다.


뜨거운 밥 한 숟갈을 떠서 입 안에 넣고 김치찌개 국물을 한 입 떠서 넣는다. 크으, 이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 맛! 김치도 한 조각 입에 넣고 계란말이를 먹으려고 젓가락을 옮겼는데 어, 케첩을 안 뿌렸네. 여기는 케첩은 셀프이기 때문에 가져다 직접 뿌려먹어야 해서 중앙 홀에서 케첩을 들고 계란말이 위에 뿌리려는 순간, 신랑이

"어, 몇 개는 케첩 뿌리지 마"라고 말한다.

"왜? 계란말이에 케첩을 뿌려야지 그냥은 무슨 맛으로 먹어?"

그러자

"아냐, 나는 케첩 뿌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냥 먹을래."

그때 알았다. 계란말이에 케첩을 안 뿌려도 괜찮은 사람이 있다는 걸.


퇴근하는 신랑과 저녁 먹을 시간이 맞아 집 앞 햄버거집에서 만났다. 와퍼와 쉬림프버거 세트를 시켜서 먹으려는데 감자튀김을 찍을 케첩을 감자튀김이 담겨있던 종이에 뿌려 찍어 먹고 있는데 신랑은 그냥 먹는 게 아닌가. 분명 연애시절에는 나랑 같이 찍어먹었던 것 같은데(나만의 착각이었나) 이제는 케첩도 없이 와구와구 먹는다. 그냥 먹음 감자튀김이 맛있냐니까 안 찍는 게 훨씬 맛있단다. 소금만 휙 뿌려져 있는 감자튀김은 뻑뻑하기만 할 텐데 그걸 무슨 맛으로 먹지, 싶었다. 케첩을 뿌려야 화룡점정을 찍는 건데 말이야.

내가 꼬맹이 시절, 엄마랑 외출하고 집에 돌아갈 때 핫도그를 한 개씩 사주셨던 날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두텁게 튀김옷을 입힌 핫도그에 설탕이 듬뿍 발라져 있고 그 위에 케첩을 아주 조금 지그재그로 뿌려주시던 아저씨. 핫도그 한 입을 베어 물면 입술에 케첩이 살짝 묻어 혀로 쓰윽 핥아먹으면 눈에 확 뜨여지게 새콤달콤 맛있었던 상큼한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근데 핫도그 속의 소시지랑 맛의 비율이 맞으려면 케첩을 지그재그로 두세 번은 짜 주셔야 하는데, 아주 가늘게 한 줄만 짜주시는 아저씨가 좀 원망스럽기도 했다. 케첩에 푹 젖은 핫도그가 좋은데 조금만 더 주시지...



모든 음식에 케첩을 뿌려야 먹는 사람은 아니지만, 계란말이, 감자튀김, 핫도그 이 세 개는 케첩이 없으면 거의 먹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이미 케첩과 이 음식들은 하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케첩이 없어진다면? 오... 나 때문인지 우리 아이도 계란말이만 내놓으면 케첩 어디 있냐고 묻는다. 엄마가 케첩을 뿌려먹다 보니 내가 케첩을 뿌려먹는 음식들은 본인도 뿌려야 더 맛있나 본데 나도 괴롭지만 아이도 당분간은 좀 힘들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없어서 죽을 정도로 괴로운 건 아니지만 단팥방에 팥 앙금 없이 먹으라면 먹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껍데기만 먹는 왠지 모를 심심함과 서글픔이 밀려오지 않을까? 내가 그렇다. 이 세 가지 음식에 케첩이 빠지면 먹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기분이 굉장히 울적해질 것 같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맛없게 먹어야 하는 이상한 억울함(?) 같은 게 밀려들 것 같고.


음식들도 분명 궁합이라는 게 있다. 그냥 먹어도 맛없지는 않으나 함께 했을 때 최상의 맛과 분위기를 낼 수 있다면 가급적 함께하는 게 좋을 테다. 케첩 없는 세상은 나에게 1프로 부족한 세상. 없어도 되지만 없으면 마음이 슬퍼질 케첩. 쌈장을 넣으면 한국 음식 대부분에 다 잘 어울리듯, 나에게 있어 케첩은 그런 존재다. 본연의 맛을 100프로 상승시켜 주는 케첩!


케첩 회사여, 절대 망하지 말고 저 같은 사람을 위해 계속 열심히 만들어 주세요. 몸에 별로 좋지 않다는 기사도 봤지만, 전 이미 늦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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