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크다. 주로 나는 부탁을 할 때 평소보다 과하게 웃는다. 눈은 반달모양으로, 입꼬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올리고 이가 훤히 드러나도록 입을 벌려서. 예를 들면 식당에서 테이블을 치워달라고 할 때, 냅킨, 포크 등을 추가로 요청할 때, 카페에서 음료 리필을 할 때 어쩌면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이어도 내가 그들의 마음을, 몸을 움직이게 해야 하니 최대한 밝고 친절한 표정으로 부탁을 한다. 그러면 대부분 상대방도 웃으면서 흔쾌히 행동으로 내어준다.
근데 예전에는 몰랐다. 나는 잘 웃고 명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지인들과 수다 떨 때에 한했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타인에게 부탁하거나 요구를 할 때는 무표정하고 딱딱하게 말한다는 것을.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행동한다고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으니 몰랐고, 나도 그 당시 내 모습을 거울로 본 게 아니고 설사 보았다 하더라도 인지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내가 그런 표정이면 보기에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아예 몰랐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지인과 대화하다가 기분이 많이 업이 됐는지 일하시는 분께 환하게 웃으며 피클을 좀 더 갖다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무표정하던 서버의 표정은 환하게 밝아졌고 곧 가져다 드리겠다고 했다. 미소 지으며 부탁하는 내 모습에 그분의 기분이 좋아지셨다기보다는 '거울효과'라고 내 표정을 따라 웃음 지으셨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순간, 내가 웃으니 상대방도 웃는다는 걸 깨닫게 된 거다. 그동안 내가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면, 일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뚱하거나 냉담한 표정들이라 왜 그럴까, 저 사람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원래 성격이 좀 못된 사람인가, 하고 상대방에 대한 안 좋은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그날 일을 겪고 느낀 건, 내가 딱딱하게 무표정으로 말하니 상대방도 그렇게 행동했구나,라는 거였다. 예의 없게 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정하게 부탁한 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이후론 더더 의식적으로 일하시는 분들께 부탁할 땐 아주 환하게 웃으며 부드럽게 말한다.
미소의 장점을 이리도 크게 깨달았는데 갑자기 웃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아이가 상을 받아와서 기특한 마음에 아이에게 입으로는 칭찬을 하고 있는데 표정은 무뚝뚝, 친구에게 선물을 받아 행복한 마음에 고맙다고 연신 말하지만 눈과 입이 일자로 고정, 남편이 근사한 식당에 데려가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데 입술로는 너무 좋다고 말하지만 진짜 좋은 건지 알 수 없는 빛깔의 얼굴. 그렇다면 상대방은 어떤 기분이 들까?
나 혼자 산다면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도 상관이 없을 거다. 웃던 울던 화를 내던 내게 리액션해 줄 상대가 없는데 표정이 뭐 중요할까. 하지만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동네 사람들이 있고 갖가지 지인들과 타인들의 눈 속에서 살아가는 매일 속에서, 웃지 않는 사람은 과연 온전한 사회생활이 가능할까?
내 입장에서 가장 속상한 일은 신생아일 때 아이를 보고 웃어주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 아기에게는 가장 큰 시련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안아주고 먹여주고 쓰담쓰담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인데 내가 엄마를 빤히 쳐다봐도 엄마는 절대 웃어주지 않고 내가 좋아서 헤헤 웃어도 엄마는 결코 웃지 않고, 내가 기어 다니다 일어서기라는 대단한 일을 해내도 엄마는 한 번도 웃어주지 않는다면 세상의 전부인 엄마에게 아이는 사랑받는 듯 아닌 듯 이상한 기분을 느낄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아이의 서글픈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아리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이 흔하게 사용해 무뎌질 대로 무뎌졌지만 그래도 그만큼 직관적으로 웃음의 의미를 잘 알려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웃으면 내 기분도 좋지만 상대방도 동시에 기분 좋게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복도 받게 된다니 이것은 1석 3조의 일이다. 그저 밝게 웃기만 해도 복을 받을 수 있다는데 그래도 끝까지 난 안 웃겠다고 버티는 사람이 있을까?
웃지 못해 끔찍했던 잠깐의 상상은 다시 하기도 싫다. 웃음의 긍정적인 효과를 나도 직접 또 겪어봤기에 앞으로 한 번이라도 더 상대에게 웃어주고 나에게도 웃어주는 사람이 많도록 미소 바이러스를 많이 퍼뜨리고 다닐 테다. 앞으로 벨라와 마주치는 분들은 각오 단단히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