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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수가 됐더라면...

by 벨라Lee

한창 '윤도현의 러브레터' 음악 프로그램이 핫하게 인기였을 때 대학 동기들이 그랬다. 네가 가수 되어서 저 프로에 나오면 애들이랑 플래카드 만들어서 응원하러 가겠다고. 그때 우린 발랄한 20대였고 꿈과 포부가 한가득이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열정만렙의 젊은이들이었다. 고1 때부터 꿈꾸었던 가수라는 꿈은 재수시절에도 여전했다. 일단 가수가 되려면 음악 관련 전공을 선택해야 할 것 같아 알아보던 차, 그 당시 동덕여대 실용음악과가 있어서 그 학과에 지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과가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연예계 진출을 좋아하지 않아 하시는 엄마의 반대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꿈을 위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히 용기를 내 실용음악과에 지원하기엔 다소 소심한 구석이 있어 결국 지원하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대학합격을 하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실용음악과에 지원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스르르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수업 내용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고 팀을 꾸려 가요제에 나가고 싶었다. 같은 과에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가 건반을 맡고 내가 보컬을, 그리고 작사/작곡가와 연주를 해줄 베이스, 드러머 등을 구해야 했다. 건반을 맡기로 한 친구가 아는 연주가들이 있다고 해서 네가 말만 하면 물어봐주겠다고도 했다. 마음은 이미 가요제에 진출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막상 일을 벌이려니 또 두렵고 잘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꿈을 이루고 싶은데 막상 그 꿈에 한발 다가가려고 생각하면 다신 지금처럼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고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지 않을까 싶어, 유명 가수가 된 것도 뭣도 아닌데 혼자 김칫국부터 마시고 잔뜩 졸아버렸다. 친구가 도와준대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쪼글쪼글 쪼그라드는 내 모습이 답답했다.


그렇게 가요제도 날아가고 남자친구를 만나 신나게 연애를 하며 가수의 꿈은 한쪽 가슴에 묻고 노래방만 열심히 다니며 노래에 대한 감각은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의 가수에 대한 열망은 연말 가요제를 보며,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음악 프로그램을 챙겨보면서 달래고 살았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지만, 정신없이 십수 년을 보내면서도 가수는 내가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일 뿐 잊히거나 지워진 과거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내가 20대 시절 가수가 되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 본다면, 일단 남자친구는 사귀지 못했을 테니 지금 내 아이의 성실하고 곰같이 진국인 아버지이자 남편은 만나지 못했으리라. 대신 젊음과 맑고 낭랑한 목소리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인기가 아주 많은 가수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맡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어느 정도 안정된 상황이 되어 멋진 남자친구를 만나 연애도 하면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으려나?


하지만 부침 많은 연예계에서 인기도 없고 음반도 잘 팔리지 않고 혹시라도 안 좋은 소문이라도 돌면 가차 없이 난 세상에 버려질 것이고 오직 가수 한 길만 바라며 걸어왔던 시간들에 후회와 좌절, 상처와 아픔으로 견딜 수 없이 힘들지도 모른다. 아마도 성공한 모습보다는 이렇게 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일단 가수든 연예인은 대중의 선택을 받는 직업이기에 설령 인기가 있다 해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을 살얼음판을 걷듯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조심하며 살아야 할 텐데, 과연 내가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만큼의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으니 그 정도 불편함 쯤이야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같이 입장에 처해도 그렇게 말을 쉽게 던질 수 있을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많고 싶지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도 싶다는 건 가능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정작 진짜 톱스타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노래 부르는 게 마냥 좋은 순수한 마음이라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인기가 없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장소를 찾고, 꾸준히 음반(음원)을 내면서 활동하는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 같다. 과연 나는 인기스타를 원하는 것일까, 노래를 하는 가수가 되고 싶은 걸까.


딸아이는 말한다. 엄마 이렇게 노래 잘하는 게 아까우니 더 나이 들기 전에 유튜브를 개설해서 얼굴 나오는 게 꺼려지면 얼굴만 가리고 노래 부르라고. 노래 실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라고, 정말 안타까운 마음을 가득 담아 날 자주 푸시하고 응원해 준다. 이제는 유튜브라는 고마운 플랫폼이 있어 직접 오프라인으로 대중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내 목소리를, 내 노래를 사람들에게 쉽게 들려줄 수 있다. 뭘 더 망설이는 걸까? 30년간 망설였음 이제 나아가도 되지 않을까?


오늘의 만약에...라는 생각이 내가 또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나중에 이 글을 쓴 것을 고마워하는 날이 꼭 오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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