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녹차라테를 홀짝이던월요일 오후, 띠링, 신랑에게 카톡이 왔다. 퇴근 후 외식이나 하자는 줄 알고 창을 열어보니 웬걸, 후들후들한 메시지가 아닌가.
시누이는 택배를 보낸 적이 없다는데 도대체 누가 시누이 이름으로,우리 집 주소는 또 어떻게 알고 보낸 걸까. 돌+I일까, 어디서 정보 해킹을 당한 건가,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오갔다. 착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해 이런 해코지를 당하는 건지,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진짜 폭탄이 배달되는 거면 그냥 밖에다 둬도 되는 건지,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겁이 났다. 카페에 앉아책을 계속읽자니눈에 들어오지않았고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좌불안석 그 자체였다. 신랑은 일단 반품신청을 택배사에 해놨으니 기다려보자 했고 그런 채로초조한 시간이 짹각짹각 흐르고 있었다. 20분쯤 후, 신랑에게 다시 카톡이 왔다.
띵.
범인은 시누이였다.달달 떨어 쪼그라든 내 심장 돌리도. 폭탄 터져아직 할 일이 산더미인 내 인생, 이렇게 처참히끝나는 건가 싶어 무섭고 구슬펐던 마음을 보상하라, 보상하라. 누가? 울시누이께서. 근데 난 왜 당연히 그 택배가 폭탄 테러라고 확신한 걸까. 작년에 대만에서 발송된 국제우편물 유해물질 테러 사건에 놀란 기억이 있어 그렇게 오해한 걸 수도 있겠다. 아무튼 택배 시스템이 무척이나 활발한 우리나라에서는 주의하고 조심하는 게 안일한 것보다는 나을 테니 신경은 꾸준히 써야 하는 것은 맞는 일 같다. 아무튼 별 일이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진짜십 년 감수했다.
시누이가 명절이나 우리 가족 생일이면 이런저런 선물을 택배로 보내주시곤 하는데, 본인 김치를 주문하실 때과거 수신인 리스트에 있던 우리 집 주소를 잘못 선택하셨나 보다.지금 생각해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앞뒤 사정을 모를 땐 기절초풍할만한 내용 아닌가. 신랑 말에 따르면, 시누이가다시김치를주문할 테니 잘못 보낸 김치는 그냥 우리 먹으라고 하셨단다. 김치떨어진 걸 어떻게 알고 이런 은혜를 내리시다니. 철렁했던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두렵던 택배가이젠 기다려지게되다니사람마음, 참 간사하구먼.
김치는 다음날 오후에 도착했고 김치 명인이 만들었다는, 나름 고급 김치였다. 근데 한 가지도 아니고 열무랑 배추김치 두 종류나 담겨 있네. 2킬로씩 4킬로라니 두달은 거뜬하겠구나싶어마음이든든했다.
열무와 배추김치
고운 빛깔의 열무김치
군침이 싹 돌게하는 배추김치
김치들을 비닐에서 꺼내 통에 담으니 붉은 고춧가루가 침샘을 마구 자극하며 입맛을 다시게 한다. 참을 수 없어 냉큼 한 젓가락집어 먹으니 여리고 부드러운 열무가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적당히 매콤하면서 짜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은, 적당한 간과 양념이 진짜 명인의 작품다운고급미가 느끼지는 맛이랄까. 멋쟁이 시누이는 어떻게 이런 맛난 김치가게를 아셨을까. 나는 종갓집 김치나 엄마가 지인에게 받으시거나 직접 조금씩 만드셔서 주는 김치만 알았는데. 사실 김치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 딱히 관심도 없었다는 게더 큰 이유였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시누이의 실수 덕분에 맛있는 김치가게도 알게 되고 김치 좋아하는 신랑 맛있게 먹일 수 있어 기쁘고, 당분간 김치 걱정 안 해도 돼서 다행이다. 이러니 시누이에게 항상 감사하지 않을 수가없다. 실수를 해도 결국 우리에게 도움으로 되돌려 주시는 고마운시누이. 글을 마치며 나만의감사메시지를 보내본다.
김치 너무 맛있어요, 형님. 역시 형님이 보내주시는 건 다 최고최고예요. 저희도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게 더 노력하고, 잘할게요. 항상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뭐 잘못 보내실 거 있으면 저희 집 주소를 꾹 눌러주세요. 형님 성함으로 잘못 배송되는 거라면 앞으로는 안 놀랠 자신 있거든요,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