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한 덩어리의 무게는 얼만큼일까? 내 삶의 무게의 추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을까? 가벼운 쪽? 무거운 쪽? 밀란 쿤데라의<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면서 나는 내 삶의 무게를 측정해볼 수있었다. 토마시의 삶의 무게와 비교해 보면서, 프란츠, 테레자, 사비나의 삶의 무게와 비교해 보면서. 그들의 삶이 내 삶의 비교 대상이 되어주었다.
"es muss sein!" "그래야만한다!". 토마시를 지배했던 문장. 이 문장이 나의삶 또한 지배했었다. 'es muss sein'이 늘 나의 삶을 컨트롤했다. 그 문장이 나의 삶을 무겁게 짓눌러왔던 것 같다. 그것이 나를 지켜주기도했지만 또 한 편으론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다. 너무 무거웠으니까.
연애는거울처럼 한 사람의 모든 것들을 비춘다. 나의 보기 싫은 내면의 것들까지 모두.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지 다 보여준다. 그것을 통해스스로가 얼마나 무거운 사람인지 가벼운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연애를 돌이켜보면, 난 참 무거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es muss sein'이 존재했다. 의무감. 우리의 연애를 행복하게, 잘 유지시켜야한다는 의무감. 연애의 본질은 잊은 채, 인간으로서지켜야 할 것들에만 집중하고, 여성으로서 스스로 만들어놓은 틀에 갇혀 있었다. 단지 누군가 그 안에서 나를 꺼내 주기만을 기다리면서.
그 의무감은 당연히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의무감이었다. 그런 의무감이 나의 무기라고 생각했다. 테레자가 토마시에 대해, 프란츠가 사비나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그녀(테레자)가 가질 수 있는 무기란 무엇일까? 오직 자신의 정조뿐. 처음부터, 첫날부터 마치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 버린 듯 그녀가 그에게 바쳤던 정조.
타인의 시선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은 삶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너무나도 많은 시선들이 존재하고,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겁기 때문에. 그 시선의 무게에 짓눌려 마음껏 연애 위에서 날아다니지 못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땅에 더욱 깊이 박혔을 뿐 전혀 떠오르지 못했다. 그 시선을 낑낑거리며 오랜 시간을 들여 나로부터 치우자 비로소 그때 연애라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그 위를 조금은 자유롭게 날 수 있었다.
연애 속에서의 나의 변화는 다른 것에서의 변화의 가능성을 비춰주는 것이었다. 내 안에서 가장 큰 무게를 차지했던 연애가 조금은 가벼워지자 전체적인 삶의 무게가 줄어들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도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하며 고민하고, 해야 하는 일을 할 때는 '하기 싫다. 나는 왜 이렇게 일에 열정이 없는 걸까...'하고 나 스스로에게실망을 하곤 했다. 어떤 사람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참한심하군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하면 되지, 그게고민입니까?"라고 어이없어할지도 모른다. 그런데그만큼 그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든 한 발을 떼는 게 힘든, 그 발걸음 하나가 굉장히 무거운 사람이 나였다.
그(토마시)는 자신이 어떤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는 일을 했고 그것이 아름답다 생각했다. 그는 내면적 "es muss sein!"에 의해 인도되지 않은 직업에 종사하며 일단 일을 끝내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사람들(그때까지 항상 동정했던 사람들)의 행복을 이해했다.
한때는 '과연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면 지금은 그것을 어떻게 유지시켜 나가느냐에 대한 물음의 답을 찾고 있는 셈이다. 그 물음에 대해 완벽한 정답을 아직 찾지 못한 것 같지만(존재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이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는 시간 동안, 읽고 생각하는 시간 동안 현재 내가 믿고 싶은 '답'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해야만 하는 일마저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내 삶을 무겁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에 매진하지 않으면 밑도 끝도 없는두려움이 나를 찾아오곤 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넌 망할지도 몰라.너에게 미래란 없을지도 몰라!'하고. 또 '젊은 사람이 그렇게 나태하게 살아서 되겠어?!'라고 꾸짖는목소리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아침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눈을 떠야한다는 생각에, 그 무게감에 짓눌려 도무지 일어나기 힘들었던 나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난다. 두 가지 일의 위치를 아예 바꿔버린 것이다. 모든것을 다 '잘'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하기 싫은 일을 무조건 열심히 해야만 보장된 미래가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 번 나 스스로에게 얘기해주고, 그 대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자고 다독였다.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을 최소화하고, 내가 하고 싶은, 내 심장이 시키는 일을 마음껏 하자고,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결코 나태한 것이 아니라고, 닫혀 있는 새장의 문을 열듯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내 마음이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내 머리 위에서 훨훨자유롭게 날았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진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이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생각 속에 더 이상의 죄책감은 없다. 죄책감이 사라지면서 꽤 많은 무게가 내 삶에서 또 한 번 줄어들었다. 그렇게 마음껏 '지금' 속을 날아다니며 그 행복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의 삶 중 어떤 삶이 가장 옳은 삶이었는지, 어떤 인물이 가장 옳은 선택을 했는지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그 어떤 선택을 해도 끝내 그것이 좋은 결정이었는지 나쁜 결정이었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까. 그저 네 인물 중 조금 더 원하는 삶에 가까워 보이는 삶이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완벽하게는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삶의 무게는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가고 있는 그 중간 어디쯤인 것 같다. 연애, 관계에 있어서 많이 가벼워졌고, 일에 대해서도 많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또 그 안에 수많은 무거운 것들이 아직 남아있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고 싶은 일'이 되어갈수록 그 무게가 점점 늘어 갔다. 가벼워져가고 있지만 아직 더욱 가벼워져야 할 것들을 발견했다.
한없이 가벼운 것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너무나도 무겁게 짓눌렀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그 무게를 이제 조금 내려놓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이 나에겐 저울이 되어주었고, 어떤 것에서 얼만큼의 무게를 덜어내야 할지를 더욱 명확하게 알려준 것 같다.
그녀(테레사)는 세상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매사를 비극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육체적 사랑의 가벼움과 유쾌한 허망함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가벼움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자, 이제 좀 더 가벼워져야 할 타이밍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책 정보
제목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가 : 밀란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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