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였다. 친구의 첫 성당 미사를 도와주기 위해 만났다가 아주 우연히 알게 됐고, 만나게 됐다. 유기견 카페와 그곳의 아이들.
우연히였고, 행운이었다. 그곳을 알게 되고, 그 아이들을 보게 된 것이. 그래도 꽤 긴 시간 이 세상에서 살면서 많은 감정들을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곳에서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만났다. 그 감정이 나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무척 좋아하고 친근하게 느꼈다. 중학교 때부터 10년 이상 함께 한 강아지와 가슴 아픈 이별도 경험했다. 일요일 아침마다 SBS 동물농장도 꼭 빼놓지 않고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동물들을 위해 내가 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안타까워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정도. 막상 다가가기엔, 그것을 똑바로 쳐다보기에 난 너무나도 나약했다.
다가갈 엄두 조차 내지 못했던 나에게 유기견 카페는 두려움 없이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나약하고 겁 많고 멘탈이 유리보다 약한 나에게는 말이다. 적어도 내가 차마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참혹한 모습을 하고, '나를 제발 데려가 주세요'하는 슬픔과 원망 가득한 눈빛을 한 그 얼굴과는 마주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이 처음엔 부담스러웠다. 아무렇지 않게 안아달라고 보채고, 테이블 위에 떡하니 올라와 앉고, 내 손을 핥고, 침 잔뜩 묻은 공을 물어다 주고. 그래서 난 자꾸 아주 작고 덜 부담스러운, 그리고 앙증맞은 아기 강아지에게만 손을 뻗었다. 성견 사이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귀엽고 앙증맞아서였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덜 부담스러워서였다.
옳은 감정은 아니겠지만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차츰 익숙해질 거라고 나를 응원하기도 했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차근차근 다가서는 것이 중요하니까. 죄책감을 가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마음이 무거워지면 지속하기가 힘드니까.
그저 이곳에 들러 잠시라도 아이들을 보고 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성당 근처에 있어 성당 가기 한 시간 전쯤 들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일단 만족하기로 했다.
다행히 두 번째 방문했을 땐 훨씬 익숙하고 마음이 가벼웠다. 오히려 내 마음 어딘가에 양초가 켜진 것처럼 따뜻하고 뭉클해지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은 요즘, 괜찮은 사람들은 다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왜 이렇게 개념 없고, 몰상식한 사람들만이 드글거릴까?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점점 사람에게 실망하는 내가 싫어지려던 찰나였다. 그때 이 유기견 카페가 나를 위로해줬다.
아니야,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이 세상엔 아직 많이 있어. 너무 실망하지 마.
그곳에서 본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동정심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주기적으로 그곳에 와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람들도 있고, 청소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고, 아이들의 이름을 아주 익숙하게 부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정말 놀랍고 뭉클했던 것은 다 큰 성견을 입양해가는 천사 같은 가족들의 모습, 그곳에서 이미 한 마리를 입양해간 적이 있는 다른 가족이 다시 다른 아이를 입양해가는 모습이었다. 그중 한 가족은 자녀들이 그곳에 있는 강아지들과 친해지도록 몇 시간을 함께 보내다가 자녀들과 함께 한 아이를 입양해갔다. 처음에 그곳의 강아지들에게 거부감을 보이던 아이들도 차츰 친근해져 갔고, 함께 그곳을 나섰다.
TV에서는 흔하게 보던 모습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참 좋은 사람들이구나'하고 쉽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실제로 내 눈앞에서 아이들이 입양되는 모습을 보니 감격스럽고 그들에게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들고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그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처럼 보였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온.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한층 겸손해지게 됐다. 내가 누군가에게 실망한다는 것이 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실망할 만큼 좋은 사람이었을까. 앞으로도 물론 일을 하면서 또 사람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또 어떤 사람에겐 실망을 하는 일도 생기겠지만 그럴 때마다 카페에서 본 사람들이 생각날 것 같다. 그 사람들의 예쁘고 용기 있는 마음이 다시 내 마음을 정화시켜줄 것 같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른 곳보다 아주 조금 비싼 커피 한 잔 사는 것뿐이다. 그리고 마구 달려드는 아이들을 한 번씩 쓰다듬고, 눈을 맞추고, 짖으면 대답해주는 것 정도. 그렇지만 그곳은 나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준다. 귀여운 녀석들이 나에게 미소를 선물하고, 재밌는 녀석들이 박장대소를 선물한다. 또 좋은 사람들이 감동을 선물한다.
내가 방문한 이래로 몇몇 아이들이 더 입양을 갔다. 그 아이들 모두 잘 적응하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데려간 사람들 모두 좋은 사람들처럼 보였으니까. 나도 아직은 쭈뼛거리는 작은 용기뿐이지만 내 이런 작은 마음이,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도움이 되고 싶다.
우연한 만남이 꽤 큰 의미가 됐다. 내 삶에서.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